북쪽이 심상치 않다. 말도 아니 되는 억지 주장을 펴며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한때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고 위협했던 그들이었으니 참는 것도 유분수지, 이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해야 하겠다.
“한방에 터지는 수류탄은 죽음과 맞바꿀 ‘용기’를, 숨이 콱콱 막히는 화생방 훈련은 ‘인내’를, 산을 오르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각개전투는 ‘목표의식’을, 천막 속에서 모포(담요)하나로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면서는 ‘전우애’를, 아아! 이제야 나는 튼튼한 체력과 자신감으로 국가를 굳건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용감한 국군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병무청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책자를 펴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타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발적으로 군무를 수행하는 건아들이 있다. 이 책은 외국 영주권이 있음에도, 육·해·공군·해병대와 전투경찰대에 자원입대하여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수기’를 모아 엮은 것이다.
영주권 사병들은 미국·캐나다·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에서 비교적 편하게 대학생활을 하던 청년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생길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들이다.
병영체험담을 쓴 장병들의 사연은 가지가지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족쇄처럼 여겨져, 국적을 감추려고까지 하였다. 우연히 병무청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 상태로 함성을 지르는 신병들의 모습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강인한 인상을 받았다. 옳다. 군인이 되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보자. 부모님께서는 내키지 않아했으나 ‘당당한 한국인’이 되고자 입영하였다.”
“미국생활에 막 적응이 되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배달겨레의 피를 받은 사람은 먼저 군대부터 다녀와야 한다’며 입대를 권유하셨다. 처음엔 불만이었으나, 결국은 아버지의 말씀에 따랐다. 지금 후회는 없다. 군은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변환점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식구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 영주권을 취득한 나는 군대를 안가도 되지만, 해병대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학군단(ROTC)장교출신인 아버지는 매우 흐뭇해하시면서 육군으로 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왕이면 ‘강한 남자’가 되어 보겠다고 고집을 부려 허락을 받아냈다.” 군인이 되려는 자식이 걱정스러워 반대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처럼 적극적으로 격려하며 기뻐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이 어눌하고 더구나 존댓말에 서투른 영주권 병사들에게는 웃지 못 할 일화도 많이 있다. 소대장이 점호시간에 “정 이병, 잘 쉬었는가?”라는 물음에 “예, 소대장님도 잘 쉬었니?”라는 대답이 나온다. 심지어는 “야, 오늘 기분 좋다. 중대장이 한턱 쏴라!”라는 대원도 있었다.
비록 한국어와 우리의 문화·정서에 익숙하지 못한 젊은이들이지만, 이들에게 있어 군 생활은 자신의 뿌리를 알고 동시에 조국애(祖國愛)를 함양하는 소중한 기간이 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2년여 동안의 군 복무는 절대 ‘낭비’가 아닌 ‘투자’이다.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만큼 앞으로는 고국과 더불어 오직 찬란한 영광만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재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느 예비역의 긍지에 찬 회고이다.
북한은 이번에 또다시 서해 해상경계선 운운하며 ‘남북 간 정치·군사적 합의사항’을 전면무효화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도대체가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저들이 무모한 도발을 저지른다하더라도 믿음직스런 국토수호의 간성(干城)이 있는 한 두려울 것이 없다. “충성! 나는 조국 대한민국의 아들입니다.” 이들의 애국심에서 우리는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본다.
溪 山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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