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고통 속에는 날개가 있다
[세평시평] 고통 속에는 날개가 있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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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의 기세가 매섭다.

이번  가족이 모이는 설날만은 동장군의 기세보다 더 추운 경제 한파를 녹이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경제 위기 한파’에 주눅 들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피붙이밖에 없다’는 얘기를 자주한다.

 가족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예전 설날에 화두는 나이든 미혼남녀와 독신으로 사는 사람에게 ‘올해에는 결혼해야지’ 가 단연 톱이다.

그러나 결혼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애정이나 삶의 성장’관계일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경제나 계급의 관계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싱글 족이나 초혼연령의 높아지는 비율은 1986년도 기준 2005년까지 무려 63%가 증가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자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올해 설날화두는 고통을 견디고 이기기위해서 ‘너는 해낼 수 있다’로 바꾸었으면 한다.

어저께 취임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전 미국국민을 감동시킨 "Yes we can"과 같은 의미다.

다윈의 진화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명은 냉혹한 환경에서 견디어 내어야 진화하면서 생을 영위하는 것일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도 환경이 주는 고통을 견디고 이기며 생존한다.

청둥오리도 생존을 위한 고통 감내로 새끼를 낳고 먹이를 확보한다.

요즘처럼 겨울이면 한밤중에 호수물이 얼지 못하도록  자신의 날개로 밤새도록 얼어가는 얼음을 깬다.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으면 먹이를 사냥 할 수 없음으로 어름이 얇게 잡혔을 때 제 온 몸을 던져서 미리 얼음을 깨놓는 것이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늘 푸르기만 한 소나무들도 결코 가만히 서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겨울 추위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터전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바위틈에서 독야청청한 노송들도 추워지면 바위틈에 실뿌리를 많이 만들어 주변습기를 가능한 한 최대로 모아 놓으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을 때 물이 얼어 부피가 늘면서 바위가 벌어지고, 그 틈새로 뿌리가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소나무도 고통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짐승이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산다는 게 만만치 않다.

어떤 생명체든 그 삶의 이면까지 들여다보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삶에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만, 고통이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고통의 경중(輕重)이 있을 뿐이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고통의 경중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독야청청한 노송같이 모든 고통에는 날개가 있은 뿐이다.

한 겨울추위와 경제 한파까지 겹친 요즘,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돌아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절도 다 겪었다.

우리들은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자신들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현실적 고통도 가벼워 질수 있고, 무거워 질수도 있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 한다면 우리는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

나는 휘귀장애 병을 앓고 있는 젊은 미술작가의 다퀴멘터리를 케이블 방송 채널로 시청한 기억을 지금 잊지 못한다. 

작가는 뇌세포가 손상되어 발달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손을 움직여서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그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루16시간 이상을 화폭에 매달리며 예술 혼을 불태운 결과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세상에 알렸다는 내용이다. 

그 작가의 짧은 멘트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잃지 않는 아름답고 눈물겨운 삶의 철학이 묻어 있었다.

“나의 몸의 유난히 떨리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고통 속에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작가의 이런 고백을 듣는 순간 나는 뜨거운 전율에 살로 잡혔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고통도 더 이상의 고통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을 깊이 응시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고통 속에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런 고백은 단지 아름다운 은유만이 아니다.

그것은 청둥오리처럼, 온몸을 던져서 생존의 희망을 이어가는 몸짓이며, 바위틈에선 독야청청한  노송의 고통을 번성으로 연결하는 생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번 설날 화두는 너든 나든 ‘해낼 수 있습니다’였으면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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