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한 해의 끝이 보인다.
한 장 남은 한해의 끝자락 12월의 열흘만을 담은 달력이 마지막 잎사귀처럼 달려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매정한 시간은 남은 날들마저 낙엽으로 쓸고 가려고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여느 해 못지않게 올해의 헌 달력 역시 을씨년스럽다.
올해는 더욱 가년스러운 서민들의 애옥살이가 한층 버거웠던 한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IMF보다 더 힘든 경제난이 서민들의 무자년 세밑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이른바 ‘747’로 상징되는 장밋빛 희망에 설레던 서민들은 새 정부 출범 1년이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벌써 좌절이라는 쓴맛을 너무 깊게 보는 것 같다.
중앙정부만 이러는 게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로 지칭되는 지방정부 역시 올 한해 곳곳에서 요란한 구호들만 만들어 낸 채 허다한 좌절들로 점철된 세밑을 맞고 있다.
빛 잃은 시화연풍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기 전 당선인 신분일 때 올해의 사자성어로 ‘시화연풍(時和年豐)을 결정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취임식 식전행사 역시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의 든다’는 의미의 시화연풍으로 치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우리나라는 이른바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시작된 촛불시위와 이로 인한 후유증이 ‘이념대결 양상’으로 비화돼 내내 국민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전국을 요동치게 했다.
곳곳에서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서민들은 허기진 삶을 호소하는데도 여전히 부유층의 상징어처럼 굳어진 ‘강부자’와 ‘고소영’이라는 단어가 세밑에도 회자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60년간 제주사회를 옭매어 온 4.3의 악령이 되살아 날 조짐까지 구체화 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질투하면서, 시기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을 봉합하고 모처럼 이뤄낸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내실 없는 신경제
김태환 지사는 올해 신년사에서 “어려운 지역경제를 ‘신(新)경제 혁명’을 통해 확실히 풀어나가겠다”며 지역경제 살리기에 도정 역량을 올인할 것을 밝혔다.
제주도정은 이에 따라 올해 각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시책들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며 이에 대한 평가도 현재로서는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도민들의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돌연 ‘영리병원’문제가 튀어나왔으며 이 문제는 도민들을 싫든 좋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험악하게 싸우는 결과로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죽어도 안 된다며 극한투쟁을 벌이고 있는 해군기지 문제도 결국 올해 별다른 매듭을 풀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있다.
백성들을 주인으로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 공직자들은 태풍복구비용으로 쓰여야 하는 재난기금을 횡령,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서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국 ‘최고의 청렴도’가 ‘부패도’로 전락했다.
2년 전 특별자치도 출범과정에서 파생된 크고 작은 문제들은 여태 해결되지 않은 채 곳곳에서 갈등과 반목으로 표면화 되고 있다.
조급한 새해 기대
김 지사는 최근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사자성어를 예로 들어 공직사회의 분발을 촉구했다.
호시우보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할 때 눈빛은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하되 마음은 조급하게 하지 말고 소처럼 우직하게 한걸음씩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이와 동떨어진 행태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도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지 채 1년도 안된 영리병원 재도입 문제를 비롯해 논의중단 결정을 내린지 2년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한라산 케이블카 재추진 문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고 있다.
빨리 성과를 내려다 일을 그르친 게 바로 이들 영리병원과 한라산 케이블카 문제인데, 이에 대한 진진한 자기반성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는 여유가 더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런데도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 소의 해 기축년(己丑年)으로 접어드는 세밑이 더 답답해 보인다.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