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에 당연히 있을법한 화두이기는 하지만, 요즘 은퇴·노년·2막 인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평균수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적절한 방안이 마련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퇴직자나 노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출판물도 많이 나오고 있어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100년의 인생, 또 다른 날들의 시작』『멋진 노후를 예약하라』『행복한 노후를 위한 좋은 습관』『행복한 노년의 삶』『행복하게 나이 드는 비결』『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등등, 대부분 희망과 위안을 주는 서적들이다.
그런가 하면 노욕·노추를 경계하는 계로록(戒老錄)『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책도 있다.
늙은이는 존중과 공경의 대상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탐욕이나 자포자기에서 벗어나 올바른 삶을 지향해야한다는 내용이다.
노후를 깨끗하고 떳떳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지난해 모 다국적 금융회사가 대한민국을 비롯한 22개국의 성인 남녀 2만4천명을 대상으로 노후와 관련한 조사를 했다.
설문 중 “당신은 은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느냐”라는 항목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로움’ ‘두려움’ ‘지루함’을 떠올렸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유’ ‘행복’ ‘만족’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결과대로라면 우리 노인들은 ‘빈곤과 질병’ ‘고독과 역할상실’이라는 사고(四苦)속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러나 사실, 부정적인 측면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어르신들이 보람 있게 제2, 제3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은퇴하다’를 영어로는 리타이어(retire)라고 한다.
타이어(tire)를 다시(re)끼운다는 뜻이니,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깊은 단어이다.
법정스님이 최근『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 숲)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제목만 언뜻 보면 말년을 보내고 있는 스님이 자기의 삶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스님은 ‘마무리’를 끝단속이나 끝맺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그는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사고(思考)와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 있을 뿐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구호가 있지만, 지금은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시대가 아닌가.
외로움과 두려움을 과감히 물리치고 만족과 행복을 구가(謳歌)해 보자. 인생의 제2막을 힘차게 열어가는 것이다.
노인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의타심(依他心)이라고 한다.
물론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한 노약자들은 달리 방법이 없을 터이지만, 웬만큼 능력 있는 노사숙유(老士宿儒)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용기가 절대 필요하다.
여생을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정책이 별무가관(別無可觀)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행정당국이 노령사회를 위한 최상의 대책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일은 빠를수록 좋다.
기업이나 일반 사회단체에서도 노인들의 왕성한 활동의욕을 재인식하고 연장자 고용정책을 별도로 수립하였으면 한다.
이에 더하여, 어른들 자신이 자립정신을 가지고 황혼기를 멋있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높임말을 쓰느라 어려운 용어를 사용한 것이 쑥스럽다.
노사숙유는 식견과 학식이 탁월한 나이 든 선비를 이른다.
참고로 ‘고령화사회(시대)’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인구의 7%를 차지할 때, ‘고령사회’는 14%를, ‘초고령사회’는 21%를 넘는 경우를 칭한다.
溪 山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