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서귀포시 시비건립’ 뒷말
[세평시평] ‘서귀포시 시비건립’ 뒷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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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다니 여사님 육영수 여사님/ 겨레를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밝은 귀 되어서 님의 높은 뜻/ 구김 없이 골고루 펴게 하시던// 그 총명 그 음성 온화한 그 모습/ 하루아침 바람에 지고 말다니/ 온 겨레 두 손 모아 명복을 비오니/ 고이 잠드소서 육영수 여사님’ 육영수를 위한 ‘추모의 노래’는 시인 박목월의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시비가 서귀포에 세워졌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그는 육영수에게 문학을 강의하고,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그녀의 일대기를 쓰면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우리는 박정희를 다시 평가해야 한단 말인가? 

  구상은 5__16을 구국의 혁명이라 불렀다. 5__16이라는 격동의 시점을 넘어 구국의 실천 수단으로 정치를 필요악으로 인정했다. 그는 박정희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진혼축(鎭魂祝)’이라는 시도 썼다. 그에게 박정희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땅에서 만난 술친구였다. 군 시절의 박정희를 강원도로 어디로 ‘찾아가 놀았다’고도 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박정희가 있었다. 박정희는 민주인사들을 사법 살인한 통치자일 뿐이다. 그의 시비도 세워졌다.

 김춘수는 한국문학의 지배적인 특징이 현실주의 내지는 역사주의라 할 때, 고독한 탈역사주의를 추구한 시인이다. 역사 허무주의와 그에 기반한 무의미 시로 치닫던 그가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치하에서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이어서 방송심의위원장으로 ‘변신’한 것은 놀라움을 떠나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고통을 당했으며, 죽음으로 치달았다. 그의 변신은 역사 허무주의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의 시비도 세워졌다.

  서귀포시와 서귀포문인협회는 삼매봉 입구 천지연지구 공원 내에 ‘서귀포 시비·노래비 공원’을 조성하고 서귀포를 노래한 시와 노래를 새긴 비(碑)를 세웠다. 처음 예정작품 가운데 서정주의 ‘고을나의 딸’은 친일파로 분류된 작가의 작품이라 서둘러 배제하는 소동도 벌였다. 전시된 시 작품을 보면 김춘수의 ‘李仲燮’(이중섭), 구상의 ‘漢拏山’(한라산), 이동주의 ‘西歸浦’(서귀포), 박남수의 ‘正房瀑布’(정방폭포), 정한모의 ‘海洋詩抄’(해양시초), 정지용의 ‘白鹿潭’(백록담), 박목월의 ‘밤구름’, 백재삼의 ‘정방폭포 앞에서’, 양중해의 ‘마라도’, 정완영의 ‘바람’,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城山浦’(성산포), 강통원의 ‘水平線(수평선)을 바라보며’, 한기팔의 ’西歸浦‘(서귀포) 등이다.

 문학은 곧 역사탐구이다. 문학으로 오늘의 역사를 감당하며, 역사에 우리 문학을 올바른 이정표로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과 역사를 시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비문학적인 것, 반역사적인 것들을 부인하며 동시에 극복해 왔다. 갇힌 문학, 막힌 시대를 열어서 해방시키는 것이야 말로 문학과 역사의 작업이다. 그래서 문학은 살아있는 역사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창조와 변혁, 그것이 곧 문학이다. 그렇다면 박정희를 흠모한 박목월과 구상, 그리고 전두환을 찬양하던 김춘수의 행위는 반역사적이며, 반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모두 시인이 아니다. 반역사적인 시인의 시비를 세우는 일 역시, 반문학적이다.

 일본에 동화되지 않고 우리 것을 눈물겹게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분단의 완충 역할로 남북의 긴장완화, 평화 통일 중개자 역할도 충실히 담당하는 재일동포 시인들이 있다. 2000년 1월, 일본 도쿄에서 결성되어 가장 왕성하게 우리 모국어로 시 창작 활동을 해온 재일조선인 <종소리> 시인회 소속 시인들이다. 금년 초 한국에서 최초로 그들의  대표 시선집 <치마저고리>도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제주가 본적인 오상홍, 오홍심, 홍윤표 시인이 있으며, 특히 홍윤표 시인은 〈정방폭포 앞에서〉라는 시로 주목을 받고 있다. 비록 <치마저고리>가 재일 조총련 계열의 대표시선집이지만, 따뜻한 동포애와 문학적 우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면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필요할까? 오히려 이들의 시비가 삼매봉 입구에 세워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서귀포 시비건립’을 두고 가슴에 품었던 이야기를 한마디 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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