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마다 ‘깜빡’하는 일상이 많다.
우선 외출 시에 핸드폰 챙기고 주방에 가스밸브 잠그는 것만은 ‘깜빡’하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
그러나 비 올 것 같은 날 우산 같은 것은 안 챙기더라도 비 가오면 싸구려 우산 하나를 사거나 아니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다.
몇 달 전 동네 헬스에 가는데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을 가지고 갔다. 운동을 마치고 오려는데 밖에는 장대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 통에 꼽아둔 우산이 없어졌다. 그래서 택시로 왔다. 그리고 그 일을 잊혀버렸다.
어저께는 친구와 같이 삼성혈 앞 국수집에서 정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예고 없이 소낙비가 내렸다.
나는 친구와 같이 신산공원 사거리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옆 상가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때 8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패 휴지를 유모차에 가득히 싣고 오고 있었다.
반대편 인도에서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녀와 50대 중년부인의 우산을 각각 쓰고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50대 부인은 소녀의 작은 우산을 접어 건널목을 지나온 할머니에게 건네주고 소녀와 그 부인은 자신의 든 큰 우산 (골프용)을 같이 쓰고 삼성혈 쪽으로 사라졌다.
세상이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졌고, 환하게 보였다.
찐한 감동을 받았고 그 부인과 한 몇 분이라도 곁에서 보고 싶었다고 한다면 허풍을 떤다고 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몇 달 전 헬스에서 우산을 잃어버릴 때 생각과 오버랩 되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 뿐 아니라 누구나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싶고, 좋은 기억은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쉽게 마주칠 수 없는 감동은 더 오래 느껴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명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기억은 힘들지 않게 지워지고,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남겨두는 것이 진정한 기억력이 힘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왜 상처받은 기억들은 너무 오래가서 우리들의 마음을 핏빛으로 멍들게 하는 것일 까? 이래서 ‘ 행복하려면 잊을 수 있어야한다’는 니체의 명언이 실감하게 된다.
며칠 전에 TV 일요명화 프로그램에서 내일의 기억(Memories of Tomorrow)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기억되는 건, ‘미안합니다, 당신을 기억 할 수 없어서...(Sorry Don't memories of you.....)’이다.
주인공은 광고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살아가는데 건망증인줄만 알았던 기억력이 기억력 망각 증이라는 병으로 시달리는 처절한 생활은 시청자를 울린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간 시간만큼 기억을 잃어가는 그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슬픔, 소중하고 소중한 추억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그를 지켜보는 가족과 동료들의 슬픈 마음은 나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망각증세로 좋은 기억을 망각하게 된 비극이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은 추억 등 좋은 기억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간직하고 싶어진다.
이 좋은 기억들은 시원하고 청량한 샘물이 되어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진정한 기억이란 많은 세월을 거쳐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이다.
그리고 정말 잊혀진 것은 잊혀져도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
몇 천원 밖에 하지 않은 우산을 준 것에 그렇게 감동받고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조건 없이, 반사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혹독한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마음이 무거운 요즘이다. 세계적인 경제 한파, 그리고 정치권의 게이트, 권력 형 비리고위공직자 구속, 등등...... 이자들은 배운 자이고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쌀 99가마를 가지고도 100가마를 채우려고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은 없어도 노파의 손에 우산을 쥐여준 여인 같은 분들이 우리 곁에는 많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는 언제나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