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 성을 가진 여성들을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성을 버릴 수 없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현상이다. 어머니 성을 같이 쓰면서, 아버지 성만 따르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자각하면서 생겨났다. 두 글자 성이 생기면서 여권신장과 남녀평등의 커다란 틀이 일반인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과거 우리는 여성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만을 강요해왔다. 벌거벗은 가부장제의 비인간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요즘 중__고교와 대학의 모습을 보라. 학업과 리더십에서 남성에 뒤지지 않는 소녀들이 이전 세대 여성들과 달리 남녀 성 구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남녀 차별'은 이제 먼 옛날 얘기로 밀려나고 있다.
이처럼 ‘알파 걸(α-Girl)’이 등장하면서 중등학교의 반장선거와 학생회장 선거에서 여성들이 차지하고, 대학의 수석 졸업자 그리고 여러 국가고시의 수석들이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알파 걸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으며 도대체 그 현상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알파 걸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없다. 페미니즘(feminism)의 혜택을 받았지만, 이미 남학생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알파 걸은 남학생들보다 더 씩씩하고 겁도 없다. 요즘 딸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딸을 알파 걸로 키우려고 갖은 정성을 쏟고 있다.
그렇지만 알파 걸은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알파 ‘걸’일 뿐, 알파 ‘우먼’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금 세대에 비해 이전 세대에서는 눈에 보이는 남녀차별의 장벽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성공한 여성의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성으로 하여금 일과 성공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구조는 아직도 굳건하게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회로 나오기까지 승승장구했던 알파 걸 대부분은 이런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그중 소수만이 초인적인 노력과 일정 정도의 희생, 그리고 주변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알파 우먼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 여겼던 알파 걸이기에 현실에 무릎 꿇거나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좌절감은 더 클 수 있다.
그렇다면 알파 걸들 가운데 몇 명이나 '알파 우먼(α-Woman)'이 될 수 있을까. 나이가 올라갈수록 특히 한국에서 알파 우먼의 숫자는 현격히 줄어든다. 알파 우먼이 소수라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파 우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알파 걸’은 댄 킨들론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가 『새로운 여자의 탄생-알파 걸』이라는 책에서 처음 만들어낸 말이다. 그는 이들이 1970, 8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유산이지만 자신들이 남학생보다 더 똑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새로운 여학생은 이전 세대의 여학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과거 사춘기 소녀들이 겪었던 에너지와 자부심 상실은 이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그들은 스스로 여권주의자가 아니라 평등주의자라고 말한다. 이제 알파 걸을 기다리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뿐이다. 결국 리더가 될 소질이 다분한 알파 걸은 여자라는 점 때문에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는다.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여자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갈등은 다양하게 얽혀 있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여성의 갈등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가족'을 둘러싼 가부장 이데올로기이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은 전통윤리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과 더불어 서양근대초기의 핵가족의 성격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부계 중심 대가족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따로 핵가족을 꾸리더라도 며느리로서 '시가(媤家)'와 맺는 관계는 엄연하게 끊임없이 차별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로 지속된다. 한국사회의 명절 풍습은 이러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