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자살(自殺)과 타살(他殺)
[세평시평] 자살(自殺)과 타살(他殺)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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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에 우리나라의 톱스타 연예인 남여 두 분이 자살을 했다.

또 며칠 전에는 서울 한 고시원에서 6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다. 

지금 세계금융위기 어두운 터널(tunnel) 속에서 실의(失意)에 빠진 우리서민들을 극도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살(自殺)과 타살(他殺)은 원유(原油)는 다르지만 죽음이라는 결과는 동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명예도, 돈도, 사랑도, 사람들이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죽음을 압둔 자들의 겨우 깨닫는 철학이다.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자의(自意)로는 죽음만은 피해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 1위국가가 우리나라지만 유명 탈렌트 자살 사건이후 자살율이 증가된다는 어느 신문기사다.

물론 ‘베르데르효과(모방자살유행)로 충동자살영향도 지금같이 어려운 때 증폭되었을 것이다.

어려운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모방자살에 현혹되는 이들에게  현혹되는 그 순간을 넘기라고 권하고 싶다.

동양의 정신세계<김종의 저>에 따르면 고대 동양사회에서는 자살은 억울함을 알리는 수단이었다.

진(秦)의 2세 황제 호해(胡亥)는 대신 조고(趙高)의 꼬임에 빠져  죄 없는 여러 사람들을 죄로 몰아 죽였다. 

이때 죄 없는 장려(將閭)는 하늘을 우러르며 세 번이나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외치고 자결했다.

그리고 공자(孔子)의 효경(孝經)에 있는 말이다.

‘몸과 피부와 머리카락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은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取毁傷, 孝之始也)’라는 공자의 유명한 말이 나온다.

공자의 명언은 유교사회에서 자살을 죄악시 했다.

 단지 자살이 공감 받는 경우는 국가가 망하는 경우이다.

왜정시대,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민영환(憫泳煥)이가 을사보호조약에 분개해서 자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은 나라에 대한 충성으로  봤기 때문이다.

한말의 시인이고 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은 1910년 일본의 대한민국을 점령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살했다.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 그리네/ 무궁화 세계가 이미 망해버렸구나/ 가을등불아래 책 덥고 지난역사 회고하니 / 인간 세상 식자노릇 참 어렵구나.

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梅泉野錄> 물론 당시정신에는  부합될지 모르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국민의 공감을 과연 받을 수 있었을까? 단언 할 수 없다.

불경 경구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지고 갈 짐을 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사람마다 고통을 받아드리고 사는 것이다. 그 고통이 언제 오느냐는 것뿐이다.

일생동안 불행을 안거치고 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세 가지 피해야 되는 것으로서, ‘소년등과(少年登科), 장년상처(壯年喪妻), 말년궁핍(末年窮乏)’이다.

10대의 소년시절에 과거에 합격하여 각광을 받는 것이 소년등과이고, 장년기에 부인의 갑자기 죽으면 인생이 비참해지고, 말년 궁핍은 노년기에 돈이 없으면 인생이 비참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소년등과는 축하 할이지, 왜 문제란 말인가?

인생은 길운(good)과 불운(bad)이 윤회하기 때문이다.

인생초장에 너무 잘나가면 인생후반에는 대부분 불행하다는 뜻이다. 인생항로가 순풍만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자살이나 타살이나  윤회되는 순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조선시대 시인이며 학자인 이학술(李學述)의 시집 ‘광시칙(廣詩則)’에 나온 말이다.

고통을 풀 수 있는 여덟 가지 방법이다. 고통이 있을 때에는 더 고통스러운 장면을 상상하라는 것이다.

 ‘추울 때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를, 더울 때는 잠방이를 걸치고 일하는 머슴을, 배고플 때에는 구걸하는 거지를, 목이마를 때에는 소금을 갈망하는 사람을, 수심이 찾아올 때는 가화(家禍)를 입은 사람을, 번민의 찾아올 때에는 순장(殉葬)을 당하는 사람을,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런 방법도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될 터이지만 근본적인 것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인생 삶은 비슷한 것이다.

욕망을 줄이면 시원하고 싱그러운 삶과 친해질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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