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우 '오바마 끌어안기"
‘독수리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내려 꽂혀 새끼 양 한 마리를 낚아채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날램을 부러워하던 까마귀도 독수리처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날쌔게 양의 목덜미를 공격했다.
그러나 발톱이 양털에 엉키고 양의 무게에 빨려 빠져 나올 수 없었다.
결국은 이를 목격하던 양치기에게 잡혔다. 양치기가 중얼거렸다.
“까마귀 주제에 독수리 행세를 하려 하다니...”.‘ 이솝 우화 한 꼭지다.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확정 되면서 정도를 넘는 정치권의 낮 뜨거운 ‘오바마 끌어안기’가 부끄러워 차용해 본 소리다.
온통 ‘오바마 신드롬‘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인종과 편견의 벽을 깨뜨려 솟아오른 독수리의 비상(飛翔)에 견줄만 하다.
세계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 만큼의 혁명적 사건이며 문명사의 드라마다.
세계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오바마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찬사를 받는 것이다.
조폭 같은 패권주의에 눈 흘기던 쪽에서도 “역시 미국”이라고 되뇔 만 한 사건이다.
새로운 ‘미국적 가치의 힘’을 과시한 미국과 미국민에 대한 시각교정이 일어날 수 있을 터이다.
我田引水식 닮은 꼴 찾기
아무리 그렇더라도 정치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오바마 물대기’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골목대장 앞에 먼저 줄서려는 동네 조무래기들처럼 유치하다.
어떤 정치인은 스스로를 ‘한국의 오바마’라고 했다.
같은 세대로서 자신의 삶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다.
4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으면서도 구속적부심까지 거부하는 또 다른 정치인은 “오바마의 돌풍을 예견했다”고 우쭐댔다.
반미(反美) 선동에 편승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미국 놈 어쩌고”하면서 주먹 팔 휘두르던 얼치기 지식인들은 ‘미국의 위대함’을 주절대며 “오바마 시대에 부응하자”고 돌변하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전직과 현직 대통령주변에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바마 신드롬’에 올라타려고 안달하고 있다.
국익(國益)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국격(國格)이나 품위는 간데없다.
나라의 지도자나 정치권, 지식인 할 것 없다.
자존심은 팽개쳐버리고 ‘오바마 김치국’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경망스럽기 까지 하다. 착각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다.
세상에서 말하듯 모두가 ‘오바(over)’하고 있다.
오바마를 닮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독수리 흉내를 내던 까마귀 신세라도 되겠다는 말인가.
조용하고 차분한 접근 필요
오바마와의 인적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미국 정부와 채널을 넓히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나라 이익을 위해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요란 떨 것 까지는 없다.
호들갑 피울 일도 아니다.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상황 변화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대응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여느 나라가 그러하듯 미국은 철저한 실리주의 국가다.
자국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다.
그러기에 안면이나 텄다고 특별대우를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미국은 지금 발등에 불이 붙었다. 오바마는 이 불을 끄기 위해 긴급 투입되는 새로운 소방수나 다름없다.
한국 정치인들의 ‘닮은 꼴 찾기 놀이’에 눈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바마 이후 미국의 미래와 국제 질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불확실성의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오바마 당선은 세계질서 재편의 신호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를 재빨리 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에 대비하는 일이다.
정치권이 빨리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나 정치권에 보내는 목소리는 더욱 날카롭고 다급하다.
“오바(over)마”. “오바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바마를 닮았다고 오바하거나 착각에 빠지지 말라는 충고다. 정말 오바하지 말고 변화의 흐름을 철저히 분석하여 전략과 비전을 가다듬는 일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미국식 역사 전환의 과정을 아전인수로 해석하거나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