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내 삶의 터닝 포인트
스물다섯, 내 삶의 터닝 포인트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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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복무하면서

▲ 가능성의 전환점

지적장애인에게도 자립생활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비관적이었던 나는 지적장애인인 선아씨를 보며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성인문해교육’을 받고 있는 선아씨가 나에게 와서 책을 슬쩍 건네주는 것이었다. 나는 선아씨가 준책을 살펴보았다. 그 책에서는 선아씨가 작년에 상을 받은 시가 쓰여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은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가을바람이
거리에 가득 차면
나뭇잎은 빨갛게 노랗게
곱게 단장합니다.
가을 안에서
-장선아, ‘가을안에서’ 2007년 비정규학교문예백일장 도지사상 수상작

‘가을안에서’란 시를 읽고 선아씨의 감수성에 깜짝 놀랐다. 가을이 오는 풍경을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표현해갔기 때문이다. 가을이 산등성이를 넘고, 거리를 넘어 단풍으로 물드는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감수성은 여느 시인의 감수성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선아씨, 이거 정말 선아씨가 쓴 거야. 다른 사람이 써준 거 아냐.”
나는 질문을 하며 아차하고 생각했다. 지적장애인의 능력이 이 정도는 아닐 거라는 고정관념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선아씨는 오히려 이런 나의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제가 쓴 거예요. 다른 사람이 써준 것처럼 잘 썼죠. 그래도 이건 내 작품이에요”
선아씨의 말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건 내 작품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 넘치는 어투 때문이었다. 나는 선아씨의 이 말투에 평소 자신감 없이 생활하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때가지 큰 잘못이 있을 때만 반성을 하던 나에게 소소한 일상에서 반성을 하게 만든 사람은 선아씨가 처음이었다. 선아씨의 자신감 있는 어투 하나가 나에겐 천만금의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선아씨는 이후로 힘이 들거나 기분이 좋으면 시를 끄적인다고 했다.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여러 편이 완성되면 보여준단다. 선아씨가 시 한편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슬프거나 기쁠 때 시를 쓴다는 사실에 선아씨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선아씨야 말로 진정한 시인의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 내 삶의 전환점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나는 이 센터에서 복무하는 기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라고 믿고 있다. 희훈이와 선아씨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모교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특수아동지도사’라는 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저녁시간이라 복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어교사의 꿈을 접고, 특수교사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삶의 보람이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란 걸 알았다. 이 곳에 복무하면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 희훈이가 평생 정장을 입을 수 없더라도 그의 삶에 정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 선아씨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 재능을 맘껏 키워줄 수 있는 사람. 물론 희훈이나 선아씨가 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어머, 마릴라 아주머니. 오늘이 바로 제가 초록지붕 집에 처음 온 날이잖아요. 그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물론 아주머니한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전 여기서 지낸 1년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루시 M. 몽고메리,『빨강모리 앤』에서

빨강머리 앤은 초록지붕 집에 온 날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전환점은 다른 사람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복무하는 동안 나는 빨강머리 앤처럼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그 전환점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내 인생의 전환점’ 그것은 소소한 일에서 삶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끝>

김  상  규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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