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이후 매년 발표 되는 사망원인 통계 결과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망률이 높은 질환일수록 주요한 건강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에 발표된 2007년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3대 사망원인은 악성신생물(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으로 총 사망자의 48.3% 차지하고 있다.
문상가는 상가집의 절 반은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으로 사망 한 셈이다.
평소에 이 세 가지 병에 대한 예방과 조기발견을 위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장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세 가지 질병 이외에 눈길을 끄는 것은 자살이다.
2006년의 경우 10대 사인 중 5위를 차지했었는데, 2007년에는 한 단계 더 높아져 4위를 기록했다.
총 규모로 보면 2007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숫자가 총 12,174명이나 되고 총 사망자의 5%에 달한다고 한다.
40세 미만에서는 운수사고와 함께 자살이 사망원인 1위이다.
그 규모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자살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인구 10만명당 10-13명 수준이던 자살자수가 매년 증가하여 2007년에는 24.8명까지 증가하였다.
2006년에 비해서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가 3명이나 늘어났다.
그 어떤 질환에 의한 사망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자살 천국이라고 알려져 있는 일본보다도 자살률이 높고, OECD 국가 중 수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0대 사인에 들어가는 질병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암, 뇌졸중, 심장병, 고혈압, 당뇨와 같은 주요 질병은 물론이거니와 교통사고와 같은 안전사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이나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음주 단속을 강화하고, 속도위반 단속을 위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자살의 경우 문제의 크기나 증가 속도를 보면 중대 보건문제로 간주되어 적극적인 관리가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자살의 경우 마땅한 대책을 찾기 어려워 드러내 놓고 자살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7년 겨울 IMF 외환위기 이후 자살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IMF 이후 사회변화가 자살율의 급격한 증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자살문제에 대해서 사회가 손 놓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최소한의 기본적 생계를 보장하지 않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한 번의 실패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타를 입고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현재의 증가 추세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덮어둘 문제는 분명 아니다.
자살이 광우병이나 멜라민 보다도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건강문제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절실한 때이다.
박 형 근
제주대학교 의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