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목전에 둔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품 마케팅 등 경제적 환경변화는 우리 제주인에게도 강도 높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화불감증’ ‘과거답습’에 대한 비판과 질책만이 비등(沸騰)할뿐 실질적인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일간신문에서 제대로 익지 않은 설익은 감귤이 대도시 도매시장에서 ‘퇴짜’를 맞고 있으며, 그리고 종전에는 일부 중간상인들이 저질렀던 감귤미신고 출하행위가 영농조합 법인도 한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이는 전체가 망하든 말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이런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은 물론 후손에게 까지 패망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발전의 걸림돌이다.
다가오는 미래는 혼자의 욕심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경제 환경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변화를 추구하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
즉 변화의 일상화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공을 거두었던 수많은 변화들의 키워드(key word)는 ‘자신의 먼저 변하고, 공감대를 확보한 후에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book of knowelege>
자신의 먼저 한다는 말은 모든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의 파문의 처음에는 작지만 점점 커져 호수전체로 확산돼 나가는 것과 같이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으니 너부터 먼저해봐라.’ 하는 권유적인 태도나, ‘나는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너는 앉아서 편히 쉬느냐.’ 고 남을 탓하는 태도, 또는 ‘나는 쉬는데 너만 혼자 뛰느냐.’며 뛰는 사람을 질시하거나 뒷다리 잡는 우리가 흔히 보는 변화의 장애물이다.
‘나부터 변화’ ‘너부터 변화’는 비록 획하나의 차이지만 그것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전부(whole)와 전무(nothing)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큰 배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 배는 꼼짝도 않을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해서 저항하거나, 혼자 무임승차하려는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예가 ‘총론찬성, 각론반대’다.
이런 자들은 취지는 동감하는데 방법이 틀렸다고 항변한다.
그러므로 변화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 성공하는 지름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시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부분최적화에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미로 속을 열심히 뛰어 다니기만 하는 눈먼 쥐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변화와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시장의 룰을 이탈한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변화의 관제탑’으로서의 지방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제주 감귤도 생산농가에서부터 유통 상인으로 변화를 찾아야한다.
금년은 사과, 배가 풍작으로 소비자가격이 반값이라고 한다.
이 사과, 배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생산농가 자신부터 변해한다.
생산농가 각자 자신부터 변하고 도민 모두는 유통 상인 감시원이 되어야하고, 그 파문이 퍼지도록 해야 한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봐도 한꺼번에 혁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국민모두가 참여 할 때 혁명은 성공하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산악인들도 한꺼번에 에베레스트를 향하지 않는다.
모든 대원들의 의지를 한데 모으고 덜 험한 한라산을 비롯한 국내 산악을 두루 거친 후에야 티베트로 향한다.
이와 같이 감귤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변해야만 한다.
전도민은 전화 고발 등 쉬운 일, 간단한 일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 한다.
전도민은 나 자신부터 작은 변화라도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한다.
작은 변화라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 실천은 감귤 불법유통단속이라는 말을 박물관에나 존재하는 단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위대한 에너지로 승화 될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