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심리가 만든 '위험사회'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독한 독감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한국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폐렴에 가까운 몸살이다.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는 주식과 환율의 널뛰기 장세 등 경기예고 지표들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국민의 체감하는 고통지수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 불신에다 경제 불안, 생활불만으로 이야기되는 ‘3불 통증(三不痛症)’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인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국민들은 기대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망에 지쳐 이제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우왕좌왕이다. 정치권도 무력하기 짝이 없다.
사회중심도 흔들리고 있다. 넘쳐나는 청년실업자, 취업이 어렵고 벌이가 없다보니 생계형 범죄자가 늘고 있다. 생계비관 자살자도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불안하다. 불안심리가 더욱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이런 사회를 ‘위험사회‘라 정의했다.
그의 ’위험사회론‘에서다.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상황이 불안을 야기하고 이런 불안이 계속되는 사회현상이 ’위험사회‘라는 것이다.
정치지도층에 보내는 경고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불안은 바로 이 같은 ‘위험사회’ 현상이나 다름없다.
예측할 수 없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져다 준 현상이다.
그래서 최근의 세계금융위기 원인을 경제논리가 아닌 불안심리 탓으로 돌리는 이들이 많다.
주가 급락의 원인과 결과를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일 터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제 불안으로 야기되는 한국의 ‘위험사회’ 현상을 극복할 방안은 없는가.
제대로 경제를 배우지 못했고 논리적으로는 어눌하지만 국민은 확실한 해법을 알고 있다. 몸으로 터득한 해법이다.
“어떻게든 경제를 활성화 시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고 소득을 높여 살만하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 보내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어떻게든 투자를 촉진시켜 소비를 늘리고 청년들에게 고용과 취업기회를 확대시키면 된다”고도 했다. 재벌 등 기업에 대한 기대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도 당연한 소리를 되뇌는 이유는 있다.
경제위기 극복과 사회갈등 치유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지도층에 정신을 차리도록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다.
우리 삶의 거품 먼저 빼내야
다음은 ‘덜ㆍ덜ㆍ덜 운동’이다. 국민이 직접 나서서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다.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자“는 소비절약 운동을 말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삶의 거품을 빼내야 할 것이다.
황홀한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일이다.
아무리 여유 있는 유한계층(有閑階層)이라도 호화 해외유람을 자제하고 사치와 낭비와 향락의 정도를 한 두 단계 낮춘다면 정서적 빈부격차는 그만큼 좁혀질 것이다.
경제용어에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이론이 있다.
돈을 벌어 지갑에 쟁이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전체적 어려움을 부를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성실성과 근검절약 등으로 인한 부의 축적은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벌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덜겢?덜 소비절약 운동’은 모두가 돈을 벌기만 하고 전혀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도한 소비를 절제하자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소비와 지출을 통해 경제적 위험사회의 불안을 극복해 보자는 제안에 다름아니다.
‘덜ㆍ덜ㆍ덜’이 경제적 불안사회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사회의 경제적 안정망이 될 수 있다면 모두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 볼 일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