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최진실法' 필요한가
[김광호 칼럼] '최진실法' 필요한가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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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같은 사람도 노벨 문학상 수상 통보를 받고 “이 상은 나에게 하나의 비상한 시련“이라고 하소연한 바 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며칠 뒤 지인인 영국의 화가 로젠스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상이 세상에 불러일으킨 흥분의 회오리 바람은 실로 두려운 것이다.

마치 개 꼬리에 깡통을 달아 개가 움직일때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며 수상을 오히려 “난처한 일이다”는 말로 표현했다.

누구에게나 유명해진다는 것은 영광이지만, 한편으론 계속 주목을 받아야할 부담감 때문에 시련의 시작이기도 하다. 작가나 스타나 항상 영광의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을 내고, 인기를 누린다는 게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한 작가와 스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 중에는 이런 요인도 다분히 있다. 독자와 팬들의 사랑이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유명 작가들이다. 가와바타는 원인을 알수 없는 가스 자살을, 헤밍웨이는 건강 악화로 엽총 자살을, 정신질환을 앓던 버지니아 울프는 강물에 투신 자살했다.

하지만 자살의 원인이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광의 순간이 지나간 뒤의 허무와 외로움 또는 소외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세기의 명배우 마린 먼로나 명가수 엘비스 플레슬리 같은 사람도 결국은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탤런트와 가수 등 연예인이 자살해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이런 와중에 특히 톱스타 최진실씨(40)의 죽음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왜 자살해야만 했을까. ‘충동적 자살’이라는 경찰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많은 국민들 또한 그렇게 믿고 있는 것같다. 다만, 자살한 유명인들이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듯이 그녀도 유서를 남기지 않아 죽음을 선택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사체업을 하고 있고, 얼마전 자살한 동료 탤런트 안재환 씨에게도 돈을 빌려줬다는 등의 악성 루머에 괴로워했으며, 결국 이로 인한 분노와 억울함을 참지 못해오다 술김에 충동 자살한 것으로 보는 견해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번 최 씨의 자살 원인에서 보듯이 사이버상의 허위사실 날조 또는 터무니없는 모욕과 욕설은 이미 도를 넘었다.

꼭 최진실씨가 아니라 누구였든, 이혼으로 인한 정신적 공허감과 인기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감 등에 짓눌렸을 명예와 인기를 중시하는 연예인에게 사람을 죽게 한 사채업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씌우는 것은 사이버의 모욕을 넘어 폭력에 가깝다.

이런 형태의 무차별적인 사이버 폭력을 추방하지 않으면 언제 누가, 누구에게 또 유사한 괴문을 퍼트려 또다른 희생자들을 양산해 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최진실法’, 즉 ‘사이버 모욕죄’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이런 법이 없으면 인터넷 악플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게 한나라당 측의 주장이지만,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이러한 범죄를 처벌하고 차단할 수 있다.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과 311조의 ‘모욕’죄는 각각 공연히 사실 적시,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때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때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도 관련 처벌법이 있는데, 다시 사이버 모욕 행위를 처벌할 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제한 이전에 가장 중요한 법적 안정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법적안정성은 법의 최고 가치이며, 다툴 수 없는 근본적 목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권당은 툭하면 법을 고치고, 새로 만들겠다고 나선다. 일찍이 진(秦)나라가 무너진 원인도 너무 많은 법 때문이었다. 수 많은 법망(法網)에도 범죄는 계속 발생했고, 끝내 파멸의 길을 걸었다.

무솔리니 역시 법을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법학자들에 의해 큰 저항을 받았다. 바로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이버 모욕’에 대한 처벌도 현행 형법을 적용하면 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관련법을 놔 두고 새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최진실씨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아울러 이 문제를 분명히 지적하고, 법 제정을 포기토록 해야 할 사람은 법학자들이다. 법학자들이 전면에 나서 여당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옥상 옥의 법 제정을 막고, 법의 안정성을 지켜내야 한다. 법학자들의 양심의 소리가 듣고 싶다.

김  광  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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