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학교생활 중 가장 마음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이 가을운동회와 소풍이 아닌가 싶다.
교실에서 주눅 든 어린이들도 이 때만큼은 기량과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가을운동회는 어린이들이 가장 즐겁고, 신나는 날이기도 했다.
운동회하면 마을 전체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는 것이 진풍경중의 진풍경이었다.
오랫동안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과 인사도 나눌 수 있고 그 누군가 보이지 않으면 안부도 묻곤 하는 것이 운동회 장소에서 가능한 일이였다.
가을운동회 준비도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서 최소 2주 정도는 준비했다.
팀도 청군팀 백군팀으로 나뉘고는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껏 소리쳤던 기억이 새롭다.
평소에 모든 경기에서 이기곤 했는데 유독 운동회 날만 되면 지는 것은 예사였다.
운동회 날에는 운동장 한 켠에 나무기둥을 만들어 합판으로 아치를 만들어 지금의 현수막과 같이 “가을대운동회” 라고 쓴 것이 유독 크게만 느껴졌다.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였고, 선생님들의 복장은 하얀 유니폼과 운동화 모자가 돋보였다.
어린이들은 빛바랜 청군띠 백군띠를 물려받아 이마에 메고는 늠름한 모습을 뽐내기도 했다.
또 복장은 아래는 광목천으로 검게 물들인 무릎 위까지 오는 반바지에 옆에는 하얀 줄이 하나 있는 바지였다.
위에는 샤스 차림이었고 신발은 연습 때는 대부분 맨발로 했고, 총연습 때나 대회 날은 역시 광목천으로 만든 지금의 양말카바나 옛날의 짚신모양인 덮신에 끈이 달린 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준 신발을 신었다.
당시의 신발이라야 꿰맨 고무신이 유일한 다용도 신발이었으니 고무신을 신고는 땀이 차서 뛸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운동회 개회식 입장도 응원구역이 있어서 점수를 기록하는 칠판도 눈에 잘 띠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또 아치를 세워놓은 사이로 노래에 맞추어서 늠름하게 입장하는 모습은 지금의 올림픽대회의 각국 선수입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달리기를 하고 골인을 하면 1, 2, 3등을 가리고 맨 먼저 뛴 사람이 자기가 해당되는 등위의 기에 앉고는 경기가 끝나면 앞사람이 1, 2, 3등기를 들고 본부석에 가서 “상” 이라고 찍혀있는 공책을 등수에 따라 교장선생님이 직접 주셨던 모습의 생각이 난다.
언제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계주였고, 이긴 팀은 전체가 공책 한 권 받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는 운동회 날이 그 아름답고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동심의 계절이 생각나는 가을 운동회는 추억속의 옛이야기가 돼 버린 지 오래됐다.
강 영 수
우도면 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