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가 제주를 망치는 시대
도로가 제주를 망치는 시대
  • 신상범 논설위원
  • 승인 200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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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제주에 관한 인상 중 첫째가 도로가 많고 잘 정비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포장도로가 등장한 것은 불과 40여년 전이다. 전엔 길이 온통 돌길이니 걷기조차 어려웠다. 비가 한 번 오고나면 주민들은 길닦이에 으레 동원됐다.

1961년 5 ㆍ16 군사혁명이 나고 맨 처음 내놓은 제주도정책은 한라산 북쪽과 한라산 남쪽을 쉽게 오갈 수 있는 도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제주시와 서귀포를 가장 단거리로 연결하는 동부횡단도로 개설과 포장이었다. 이 길이 제주도 도로 현대화의 효시이며 제주의 산업과 도민생활과 문화를 새로운 패턴으로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제주시에서 서귀포를 오가는 시간은 발라야 5시간이고 자동차가 중간에서 고장이나 날 때는 하루종일 절릴 때가 다반사였다.
불과 43㎞의 이 도로가 개통될 때는 섬전체가 떠들썩했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도의 도로는 이젠 전국적으로 도로망이 가장 많고 전부 포장이 되어 포장율 100%를 기록하고 있다.

▶길은 많아서 좋을 수도 있지만 많은 도로가 이젠 제주도에 피해를 주고 있다. 도로를 그냥 토목적 기준에서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로의 기능을 단순히 자동차의 편의와 시간단축이라는 편견이 이젠 역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풍요롭고 넉넉해야 할 올 추석을 지옥같이 느끼고 있는 동부지역 주민들이 그 피해자들이다. 물론 집중호우로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도로공사를 할 때 자연지형에 따른 수로를 모두 막아버려 물이 집중화된 때문이라는 현지주민들의 주장이고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런 현상은 제주 어디에도 일어날 수 있다.
도 제주의 주 자원인 자연생태계를 크게 훼손시키고 우리의 귀중한 해양문화를 없애버렸다.
도로가 생태적인 동식물의 이동을 막고 큰 물의 흐름 등으로 생물들의 고유한 서식지역을 없애버리고 있다.
미국 등 선진문화국가들에서는 사막 가운데를 관통하는 도로도 500m마다 생태도로를 만들어 동식물의 이동을 보장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특히 제주의 해안도로는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행정당국이 제주 해양문화의 기틀인 어촌을 모두 없애버린 결과가 되었다. 가난한 어촌사람들은 투기꾼들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어 집과 밭 다 팔아버렸고 그곳엔 온갖 국적없는 잡동사니 건축물과 대부분 퇴폐 상업꾼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제주의 지질적 특성이 잘 보존되었던 용암대 위를 콘크리트로 덮으며 도로를 만들어 지질ㆍ경관과 해안생태계를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당국은 이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를 기피하기 위한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이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도로건설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길은 그 지역의 문화, 역사, 환경을 가장 잘 표현하는 징표이다. 도로를 직선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젠 선인들의 만든 길에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할 때가 되었다.

논설위원 신  상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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