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9.28의 또 다른 의미
[세평시평] 9.28의 또 다른 의미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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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도읍지 한양은 두 번씩이나 외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수치를 당하였다. 하나는 임진왜란이요, 다른 하나는 병자호란 때였다.
1592년 임진(壬辰)4월, 일본은 명나라를 치는데 길을 열어달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나라를 대대적으로 침범하였다.
명나라 정벌은 일본의 구실일 뿐, 실제 대상은 조선이었다. 부산을 거쳐 파죽지세로 올라온 15만 왜군은 한 달도 되기 전에 한양에 입성하였다.

이보다 앞서 선조(宣祖)는 조정대신들과 함께 한양성을 뒤로한 채 피란길에 나섰다. 일국의 최고 통치자가 도성(都城)을 버리는 순간이었다. 왕이 떠나자마자 일부 민중들은 노비문서를 보관하는 장예원과 형조에 불을 질러, 궁궐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피신하는 임금 일행에게 백성들은 돌팔매와 욕지거리로 응대하였다.
민심은 이미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나라와 백성은 돌보지 않고 당파싸움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운, 그리하여 외침(外侵)에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도망이나 하는 그런 부패 · 무능정권에 대한 당연한 분노이자 질책이었다.   

 왜란이 끝 난지 30년만인 1627년, 이번에는 만주의 신흥국인 후금(後金)이 황해도 평산까지 쳐들어 왔다(제1차 침입-정묘호란). 인조(仁祖)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도피했다. 화의를 통해 형제의 의를 맺고 간신히 화를 면하기는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조선에 대해 군신(君臣)관계를 맺도록 강요하여왔다. 조선이 이에 불응하고 대항하려하자, 청은 1636년 다시 국경을 넘어왔다(제2차 침입-병자호란). 처음 한차례의 침범에는 협상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번에는 물밀듯이 몰려오는 10만의 적군에 패배하여 국도(國都)한양을 빼앗기고 만다. 임금 인조는 피신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태종에게 신례(臣禮)를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항복이다.

 이들 양대 난을 두고 함석헌 선생은 그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조선 건국 2백년의 역사를 심판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보낸 폭풍우였다”라고 질타하고 있다. 무사안일과 퇴폐향락으로 썩어빠진 지배계층에 대한 신(神)의 징벌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율곡 이이(李珥)의 10만 양병론도 “공연히 백성에게 부담을 지우고 민심만 불안케 한다”며 애써 외면했던 벼슬아치들이다.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북한공산군의 침략을 받게 된다. 피침(被侵) 3일 만에 우리는 서울을 함락당하고 만다. 9월 28일은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도로 찾은 날이다. 수도(首都)는 그 나라의 심장부다. 심장은 곧 생명이다. 심장은 몸에 필요한 혈액을 공급해주고, 영양분을 전달해 준다. 우리의 목숨을 유지해주는 기관이 ‘심장’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심장이 갑자기 멈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심장이 박동을 그치면 우리의 생명은 끝난다. 

 그렇다면 국가의 심장인 수도가 그 기능을 멈추었다가 회복했다고 하자. 이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임진왜란 · 병자호란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이 치른 그 수많은 고통과 수모를 상정(想定)한다면 당연히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이를 길이길이 기려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생명이 중단돼버리는 불행한 일,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끔 단단히 정신무장을 해야 하기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9.28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수도탈환’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축구4강이나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에는 열광하면서도, 정작 대한민국의 심장을 소생케 한 ‘9.28 서울수복’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어찌 되겠는가. 수도를 되찾는데 앞장서고 중앙청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한 해병대. 9.28은 그들만의 기념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터이다. 수도는 국가의 심장이다. 심장은 바로 생명인 것을.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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