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와 9.28
해병대와 9.28
  • 제주타임스
  • 승인 200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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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잊지 말아야 할 특별한 날들이 있다. 국가적인 경축일에서부터 사적(私的)인 기념일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날들이 우리의 의식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음을 본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젊은 세대일수록 심한 편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9.28이다.

 9.28은 무엇인가. 1950년 민족의 비극 6.25가 발발(勃發)한지 불과 사흘만에 우리는 수도(首都)서울을 함락 당하고 만다. 수도는 일국(一國)의 심장부이다. 심장부인 수도를 잃는다는 것은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정말로 위험하고 수치스런 일이다. 그런 치욕으로부터 석달 만에 다시 찾은 날이 9월 28일이다. 신음(呻吟)속의 3개월, 적치하(赤治下)에서 시달리던 서울을 수복한 9.28이야말로 영원히 기념해야할 날이다.

 이러한 9.28은 우리 제주인들에게는 더욱 감회가 깊다. 수도탈환작전에 제주출신 해병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까닭이다.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고장의 젊은이들은 용감하게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 중에서도 3천여명의 청년 학도들은 해병대로 자원하였다. 입대와 동시에 이들은 통영작전·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며 ‘귀신 잡는 해병’의 신화를 창출해 낸다. 순박하면서도 단결과 인내심이 강한 제주인 특유의 기상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드디어 9월 28일, 제주출신들로 주축을 이룬 해병대에 의해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상징이던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는다. 유엔군 특히 미군에 의해 주도되던 6.25전쟁에서 우리 병사들이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국기를 게양했다는 것은 국군의 자존심을 살린 쾌거중의 쾌거요, 전 국민의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해병사(海兵史)는 제주도를 ‘해병의 고향’ ‘해병 제2의 발상지’로 기록, 제주출신 해병들의 장거(壯擧)를 칭송하고 있다.

 이들의 출전과 호국정신을 기리는 ‘해병혼’탑이 제주시내 동문로터리에 우뚝 솟아있다. 군함을 타고 출발했던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출정한 날인 9월 1일은 ‘제주 해병대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해병 예비역들의 단체도 많다. ‘해병대 제주도전우회’를 비롯하여 시·읍·면별로 전우회가 결성되어 있고, 기수(期數)별·계급별로도 조직되어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역 해병들도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군무(軍務)에 충실하고 있다. 북제주군 한림읍 출신 김인식 장군은 해병대 최고위직인 사령관으로서 제주인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으며, 제주대학교 학군단에서는 ‘해병의 고향’이라는 특성을 살려 해마다 해병대 장교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승리와 영광만이 해병대의 전부는 아니다. 사령부 폐쇄라는 수모를 겪었고 과오 또한 있었다. 이도영 박사의 ‘죽음의 예비검속’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6.25를 전후하여 제주도에 주둔했던 해병대가 계엄군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명령과 복종을 생명으로 하는 군(軍)이기에, 명령의 정당성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를 수도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잘못된 것은 정중히 사과하여야 한다. 비판받을 것은 비판받으며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현재와 미래가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수도 서울을 탈환했던 ‘무적해병’의 명성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해병대다운 해병대’가 되어야 한다.     

제주산업정보대학장 이  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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