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마당에 서있는 한 그루 소나무
[세평시평] 마당에 서있는 한 그루 소나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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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마당에는 다른 나무들과 함께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몇 십 년 전 내가 집을 마련할 당시에 정원수로 심은 나무다. 다른 나무들은 가지를 전정(剪定)만 해주고, 약만 쳐주면 관리 할 수 있으나 소나무 관리는 좀 어렵다.

초봄에 새순을 따 주어야하고, 솔 입도 뽑아 주어야한다.

관리가 어려운 것과 반비례해서 정이 더 가는 나무이다. 고목은 아니지만 제법 솔향기와 자신의 위치를 알아서 자신의 서야 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서 집안의 절개와 지조를 지켜주는 것 같아서 좋다.

나는 60년대 초등학교 때부터 소나무와 인연이 있었다.

나의 집안일이지만 나의 할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재산 분배 시에 중산간에 있는 소나무 밭과 시내 안에 있는 농경지를 같은 가치로 분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소나무는 금전적 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시내 밭과 소나무밭을 동일한 가치로 분배되었으나 세월이 흘러 시내 밭은 도시계획으로 개발되었음으로 소나무밭과는 가치 차이가  엄청나서 아버지들끼리 다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소나무를 미워했고, 더구나 학교에서 송충이 잡으러 가는 날이 싫어서 소나무를 미워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당시 제1공화국시대 이다. 제2인자인 이기붕 부통령의 호가 만송(晩松)이다.

나는 어린 생각으로 왜 훌륭한 부통령의 왜 미운 소나무 호를 지었나하고 의아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지금 마당에 서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우리 인간과 비교가 안 되는 태란습화(胎卵濕化)의 사생(四生)경지를 거친 자연윤리(自然倫理)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소나무는 우리 선조와 가장 친숙한 나무이다. 평생을 소나무와 함께 사는 게 우리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농경사회에서는 소나무 목재로 집을 지어 살았고 죽으면 소나무관에 묻혔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소나무 생피를 벗겨 배고픔을 이겨냈고, 현대에서는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먹거나 가지의 입을 가루로 내어 웰빙(well being)음식을 만들고. 새순으로 스태미나 드링크(stamina drink)만들어 마신다.

또 애국가 2절에는 “남산에 저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라고  그 기상을 높이 샀고, 여러 나무 중에 유일하게  벼슬(정2품)한 속리산 법주사입구에 소나무도 있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 군자나 절개, 지조 등으로 비유 되었으며, 유명화가들의 한국화의 소재(thema)이기도하다.

나의 집 마당에 서 있는 소나무는 같이 있는 감나무, 비자나무, 석류나무 등등에 비하여 생의 스트레스를 더 받고 사는 것이다.

 매년 초에,  한해의 삶의 둥지를 만들기 위하여 어렵게 돋아 오르는 새순을 따버려도 운명으로 받아드린다.

솔 입도 매년 뽑아 버려도 견디는 것이다.

이 문명의 충격(impact)을 감내하는 나의 집 마당에 있는 소나무는 고독(孤獨)을 안다. 집안의 괴로움을 알고, 문명의 오염을 미리 알고 인간의 욕망을 안다.

그래서 인간을 탓하지도 않고,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뿐이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알기 때문이다.

어떤 기대도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생명, 마당에 서있는 이 소나무다.

 나는 이 소나무와 같이  나도 어떤 기대도 없이 열심히 살아가면 창조적일 수 있고 불행 없이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있을 때 이 소나무와 무언의 대화를 갖는다. 그래서 숨 돌릴 여유를 찾고 견딜 때가 가끔 있다.

나와 우리가족과 수많은 애환과 대화를 나누며 나를 지켜주는 이 소나무는 나보다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고독을 견디며, 고독을 이기며, 인간에게 보배로운 존재로 오래 오래 이 대지를 지켜주겠지.......

이 소나무는 나의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의 절인주의자(哲人主義者)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윤회설(輪回說)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소나무가 되고 싶다.    

김  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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