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아 잘있거라
6번아 잘있거라
  • 고창일 기자
  • 승인 2004.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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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귀성(逆歸省)이 부쩍 늘었다.
명절이면 교통지옥을 겪으며 고향을 찾는 자식들이 딱해 보인 시골사는 부모님들이 거꾸로 서울 자식네 집을 방문하는 현상을 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저마다 고향으로 각종 교통편이 번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T.V화면에서는 김포공항이나 서울역,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무공해 농산물을 바리바리 보따리에 싸고 마중 나온 식솔을 찾는 노인들을 심심찮게 비치게 될 것이다.
제주에서도 항공편을 이용,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고 오는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K모씨도 추석을 맞아 고향에서 올라 온 아버지와 추석을 지낸 지난해 황당한 경험을 떠올렸다.
중3짜리 유일한 손자를 오랜만에 본 참이라 며칠 묵고 갈 것으로 여겼지만 아버지는 괴상한 쪽지만 남기고 휑하니 가버렸다.

쪽지 내용은 '6번아 잘 있거라, 3번은 간다'였다.
자신에게 준 쪽지니 6번은 알겠는데 3번은 아버지를 뜻하는 건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아들은 아버지가 도착할 때쯤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서울 집에 가보니 1번은 손자, 2번은 며느리, 3번은 자신, 4번은 애완견, 5번은 파출부, 6번은 다름 아닌 제 자식인 K모씨라는 해설이다.
그게 무슨 순번이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 집에서 대우받는 순서를 하루동안 지켜본 결과"라고 대뜸 화를 냈다.

물론 우스개 소리다.
요즘 자녀는 대부분 한 명 아니면 둘이다.
아들이 첫 자녀일 경우 특히 더 낳지를 않는다는 것이 관계당국의 분석이다.
이렇다 보니 집에서 일등 대우를 받는다.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여성 파워가 세지고 경제권을 거머쥔 안주인은 권력서열 제2위.
'썩어도 준치'라고 시아버지는 3위. 애완견 강아지는 그 다음이다.
싫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그만 두는 탓에 파출부도 소홀히 대할 수 없다.
가장 만만한 것은 가장인 K모씨.
이를 속상하게 여긴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향집으로 가버린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탓에 제수감을 줄이는 가정이 많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가장들은 미안할 따름이다.
그러나 먹거리 많고 적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가족끼리 빙 둘러앉아 서로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송편 하나라도 빚을 수 있다면 그것이 '한가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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