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 관계없는 감동 드라마
‘역사는 2등도 기억 한다’고 했다. ‘꼴찌도 기록하는 것’이라 했다.
“꼴찌가 더 아름답다“는 말도 있다. 빈정거림이 아니다. 꼴찌에 대한 위로만일수도 없다. 앞으로 이뤄 낼 수 있는 꿈과 희망이 더 크고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초라하지만 내일의 영광을 위해서 몸을 추슬러 최선을 다해 새로 일어서는 사람들. 그래서 아름답고 위대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 지상주의, 등외가 용납되지 않고 승자독식이 판치는 사회 현실에서 ‘꼴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얼마나 쑥스러운 패러독스인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쏘아 올린 우리선수들의 보낸 메시지가 그렇다.
우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지고도 이기는 진정한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등 외자들의 땀과 눈물도 빛나는 보석처럼 빤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매순간 그들은 국민을 하나 되게 했다. 가슴 벅찬 드라마 같은 감동을 줬다.
그래서 함께 웃고 함께 가슴치고 함께 울며 승패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동행’을 한 것이다.
등외의 땀과 눈물도 격려를
평균나이 32세. ‘우생순(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아줌마들의 금메달보다 더 눈물겹고 값진 핸드볼 동메달.
종아리 경련으로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고 분투했던 역도 이배영의 치열했던 감동 스토리.
상위권과 멀어져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38세 마라토너 이봉주의 고집스런 완주(完走) 레이스.
그들의 투혼은 눈물겨웠다. 안타까웠다. 가슴 찌릿한 감동과 좌절을 동시에 맛봤던 순간들이었다.
이들만이 아니다. 지난 4년간 피땀 흘리며 준비 했으나 아깝게 순위에서 멀어졌던 선수들. 그늘에 가렸지만 그들에게도 메달리스트 못지않은 환호와 격려가 돌아가야 한다.
이들을 내세워 빛나는 메달리스트들의 노고와 영광을 끌어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혼신을 다해 일군 메달은 더 없이 값지고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찬사와 환호와 영광을 받아야 한다.
다만 여기서 ‘꼴찌를 위한 변명’을 하는 것은 입상 선수 못지않게 등외 선수들의 흘린 땀과 눈물과 분투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서다.
꼴찌가 있어야 1등이 있는 것이다. 패자가 없다면 승자가 어떻게 나오나. 스포츠의 본령은 승패 못지않게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에 있다.
실패보다 무서운 건 '포기'
관중의 환호가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꼴찌 마라토너’를 위대하다고 했다. 소설가 박완서다.
1977년 발표한 그의 산문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다.
‘고통스럽고 고독하지만 정직하게 끝가지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고 했다. 가슴 뭉클 했다고도 했다.
어떠한 실패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렇다. 죽음보다 무서운 건 실패가 아니다. 좌절과 절망이고 포기하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입상하지 못해 쓸쓸히 귀국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 등수에 연연하지 않은 최선, 정정당당한 승부는 운동선수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일 수만은 없다.
그래도 최고와 1등만을 바라보며 반칙과 변칙을 서슴지 않는 원칙 없는 사회 현실을 비틀어 꼬집는 것 같아 쑥스러워지는 아침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를 장외로 던져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