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취임당시 ‘대한민국 30년’을 공식 연호로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금년 ‘건국 89주년’은 맞는 이야기다.
임시정부 시절부터 ‘국가적 실체’가 만들어졌고, 통일 후 정통성 확보라는 관점에서 임시정부를 건국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헌법 전문도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이라 하여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건국 60주년’이라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진보ㆍ부수 양진영의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8ㆍ15 하면 ‘광복절’로 받아들였지 ‘건국기념일’임을 생각지 못했고, 건국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지금까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을 할 당시 중앙청에 걸린 현수막에도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이라고 분명히 적혀있었다.
건국 60주년을 주장하는 것은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없을 뿐더러,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도 위배하는 것이다.
친일파들에게 ‘우리 대한민국 건국에 이들도 공로가 있다’며 면죄부를 주려는 속셈도 그 밑바닥에 깔려있다.
이제 임정 29년의 기억을 지우려는 반민족적 의식은 지워져야 하며, ‘건국 89주년’을 분명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만일 1948년의 8?5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 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는 100년도 못되는 신생국가로, 임시정부의 존재는 ‘망명정부’ 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미군정 3년이 한국사에서 떨어져 미국사에 편입되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존재를 배제해 버림으로써 분단체제를 영구화할 수 있다.
1910년 8월 29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38년을 스스로 국권상실 또 국맥단절기로 만들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광복’이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고, ‘건국’이란 ‘나라를 세움’이다.
광복이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은 것을 강조하는 데 반해, 건국은 단순히 대한민국 국가가 성립된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8ㆍ15는 우리에게는 분명히 ‘광복’으로 기억되어 왔다. 하지만 이는 1945년 8ㆍ15이며, 1948년 8ㆍ15는 다른 의미이다.
48년은 남북한 분단정부가 가시화된 시점이며, 이를 법적으로 남북한이 정당화한 시기에 불과하다.
특히 4? 항쟁을 체험한 제주도민들에게 1948년 건국과 그 시기는 ‘잊고 싶은 상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승만을 민족의 최고지도자로 떠받드는 것은 민족을 욕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뉴 라이트를 비롯한 일부 보수 세력들은 이승만을 역사의 한복판에 등장시키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이승만은 임정 출범 때, 그리고 1948년에 두 번씩 대통령이 됐다.
30년 간격으로 대통령 된 사람이 또 누가 있는가.
동시에 그는 1925년 임시정부 시절 의정원에서 탄핵을 당했고, 1960년에는 4?9 혁명으로 다시 권좌에서 물러났다.
두 번 다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 이승만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승만을 민족의 최고지도자로 떠받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일부 보수 세력들의 작태는 중단해야 되지 않을까?
여기에는 독도문제도 걸려있다.
일본은 1905년에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데 건국절이 인정된다면 대한민국은 1948년에 탄생한 신생독립국으로 전락해 더 이상 독도를 우리 영토로 주장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참된 의미를 짓밟는 행태는 중단되어야 한다.
일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침탈된 주권국가를 되찾았다면 그날은 광복절이지 건국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영국에 대한 독립을 선포하고 독립전쟁을 시작한 1776년 7월 4일을 기념하지, 미국의 연방정부수립을 한 1789년 4월30일을 기념하지 않는다.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해야 하느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해야 하느냐에 대한 선택에 대한 답은 분명하며, 이는 4ㆍ3을 체험한 제주도민들에게 역사의식을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