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은 남이 시키는 대로 의식 없이 복종하는 존재다. 노예제도의 종이나 넓게는 종속의 의미를 포함한 경우다. 주인공과 그 반대측면을 살펴본다.
본 논제의 범주는 넓은 의미다. 정신문화와 과학기술의 선·후진에도 주와 종은 존재한다. 가족의 부모와 자식, 조직에서 ‘上司와 部下, 勞動市場의 ’使用者와 勤勞者,‘ 社會의 ’貧·富와 貴·賤,‘ 師· 弟, 有·無知, 先·後輩,’所有의 有·無와 賃·貸借‘, 農村의 ’小作人과 地主,‘ 파레토법칙의 ’20%와 80%‘, 국제간의 ’强大國과 弱小國,‘ 나라 안에 ’中央과 地方‘등의 분류다. 정신적으로 主와 종이 顚倒되기도 한다. 主의 位置라도 본 역할을 잃으면 從이란 말이다.
上司가 부하의 상전이나 면피로 관리하던가, 전쟁에서 지휘자가 부하보다도 본분을 망각 하면 종과 같다. 반면 부하의 위치에서 목표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면 주인공이다.
자기사명을 망각, 태만하고, 계급타령, 보수타령, 신세타령만 한다면 종 중 종이다. 계급의 차이나, 빈·부 등은 현실이며, 주-종의 가치는 아니다. 자세와 마음가짐에 따라 개체적으로 주인과 종이 존재한다.
이 경계는 내면생각 나름의 판단이다.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도 모든 국민이 개인적으로 나라의 주인이란 말이다.
필자는 어선에 동승한 경험이 있다. 어부가 구릅이 되어 구물을 거두는 일이다. 한 사람은 힘을 아끼며, 일은 최소로 하는 어부를 보았다. 이를 두고 선주는 그 사람은 젊을 때도 그렇고 늙어도 불변했으나 사정에 끌려 대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가정도 어렵다고 하였다.
이런 마이너의 행위는 주인의식이 부족에서 온 결과라고 본다. 무슨 직위나 위치든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주인공이 되는데 이를 못하고 상대 적 빈곤에 잠긴다면 종으로 추락되기 마련이다. 종 같은 주인, 주인 같은 종이 있다는 말도 된다. 주인과 종은 행동거지가 같다.
한국은 내외국인의 투자가 강성노조도 기피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소속사의 존재와 운명공동체이며 주인공이다. 회사가 망하면 자기의 존재도 없어진다. 그런데 투자를 막는다면 자기모순이다. 모든 분야에 역지사지하는 주인공이란 인식을 모르는 경우이다.
가난과 부자의 시각도 같은 이치다. 3대 부자 없고, 가난도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빈자는 부자에 대해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않는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평등의 덕목이 중요성을 역설하고 노동자의 주인의식 자본가의 노동착취를 논리적으로 설파했다.
레닌은 이를 실천하려 ‘러시아왕정’을 혁명으로 물리치고 ‘소비에트공산국가’를 1917년 건설했다. 그런데 소련은 70년 만에 망한다. 지금 러시아국민은 그 시기를 ‘잃어버린 70년’이라 자평하고 있다. 아무리 이론이 좋아도 인간의 차등 성을 몰랐던 것이다. 머리·노력·자세에 있어 능력의 차· 건강의 차· 의식의 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농지개혁을 단행 소작농비중63%의 종의 구조를 12%로 낮추었다. 이 결단은 다음해 6·25전쟁을 버틸 수 있었던 요인으로 작용했다. 종전대로의 상태라면 대다수 소작농민은 종 의식으로 집단농장을 선택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소 간 냉전시기에 소련이 식량부족을 미국농산물수입으로 해결했다. 미국 내 일부 보수여론은 식량수출을 중단하자고 했다.
반대론은 중단조치를 취하면 소련국민이 분노한다. 그러면 소련은 식량자급이 가능하고, 수출국이 될 수도 있는 주인의식이 강해진다고 했다.
넓고 기름진 농토가 집단농장으로 생산성이 뒤졌기 때문이다. 계속 수출을 하라는 논리가 옳은 판단이었다. 이태리 독재자 ‘뭇 소린’은 실패한 정치가이지만 주인의식은 대단했다.
어린 시절 가난뱅이는 청운의 꿈을 품고 로마를 향해 먼 길을 걷다 배가 고팠다. 마침 빵집 앞을 지나는데 빵 굽는 냄새는 나고 돈은 없고 빵집주인에게 빵을 구걸했다. 주인은 ‘불쌍한 애’라면서 빵을 주었다.
그 빵을 먹으려는 순간 빵집주인이 ‘불쌍하다’는 말이 상기되었다. 내가 불쌍한 존재가 되었느냐며 입에 물었던 빵을 배타버렸다고 한다.
주인공의식이 살아 난 것이다. 가난해도 당당하고, 자주성을 가질 때 주인공이다. ’나물 먹고 물 마셔도 그 속에 즐거움이 있으면 주인공‘이다. 공자·예수· 석가가 그런 길은 걸은 성인이다.
주인공의식은 개인·집단· 나라의 존재필수인자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약해지면 패배·굴복·거지·구걸·의타 ·신탁 등 종속근성이 되기 쉽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종이기 마련이다.
이런 함정으로 추락하는 길을 막는 데는 주인공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관건이란 이야기다.
즉 주인도 종도 아닌 상생으로 융합하는 정반합의 세상인심을 기대해본다.
김 계 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