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뜨거운 눈물이 슬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물보다 더 슬픈게 있더군요. 바로 미소였습니다.
한국 남자역도의 간판 이배영(28)은 아마도 이번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인들의 ‘짜요’ 하는 응원을 들은 첫 한국 선수일겁니다.
중국내에서 한국 선수단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지난 8일 열린 개막식에서도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박수를 아끼던 중국인들입니다.
12일 남자 69kg 급 경기가 열린 베이징항공항천대 관중석도 처음엔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중국 선수들 때문에 견제심리를 발동한 탓이기도 했지만 처음 이배영은 관중들의 응원 없이 쓸쓸하게 인상 경기를 치렀습니다.
관중들의 환호가 없어도 그의 ‘살인미소‘는 여전했지요.
한번씩 바벨을 들어올리고 성공할때마다 이배영은 두 손을 들어 활짝 웃으며 관중들에게 답례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용상 1차시기. 184kg의 바벨을 들어올리려던 이배영에게 초대하지 않은 손님 ‘쥐‘가 찾아왔습니다.
관중석은 술렁였습니다.
이배영은 뒤로 넘어져 다리를 들어올렸고 관계자들은 황급히 달려나와 그의 다리를 풀어주려 애썼습니다.
플랫폼을 내려온 이배영은 응급처치 삼아 쥐를 푸는데 좋다는 마그네슘을 집어 먹었고 피가 나도록 수없이 바늘로 다리를 찔렀습니다.
“이게 내 마지막 올림픽인데, 기대해주는 국민들이 있는데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는 이배영은 2차, 3차 시기에 다리를 절뚝이며 등장했습니다.
역도는 다리로 힘을 지탱해줘야 하는 운동입니다.
한번 다리의 근육이 뭉친 이상 빠른 시간에 회복이 되리란 만무했습니다.
3차 시기. 이배영은 바벨을 들어올리다가 앞으로 쭈욱 미끄러졌습니다.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던 이배영은 결국 땅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웃었습니다.
그리고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스포츠 정신’이란 어디에서든 통하는 모양입니다.
중국 관중들이 너도 나도 ‘짜요’를 외치며 그를 응원했습니다.
관중들 앞에서 밝게 웃던 이배영은 복도로 걸어들어가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기자들을 만난 이배영은 또 웃었습니다. 분명히 웃고 있는데 너무도 슬펐습니다.
역도 선수 출신인 아내 시선희씨와 경기 직후 전화통화를 하며 ‘어디에 있어?’, ‘괜찮아’ 라고 분명 슬퍼하고 있을 아내를 달래면서 환하게 웃었습니다.
거듭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이배영의 말이 결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보여준 것이 없어 죄송하다’는 그의 말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배영은 스포츠의 모든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효정의 눈물, 이경원의 웃음
지난 15일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전이 끝난뒤, ‘동생’ 이효정(27)은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처음엔 ‘은메달’이라 서운해 우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내가 너무 못해서 졌다”는 자책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기에서 이효정은 ‘언니’ 이경원(28)이 1세트 중반 발목을 다치면서 휘청거렸습니다.
‘친언니’ 같다는 이경원이 다쳐 다리를 절뚝거리자 마음이 콩닥거린것입니다.
경기마다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는 이경원이 아프자 경기 중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괴롭힌 이효정은 ‘내가 잘해야지’ 하다가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경원 선수가 국제무대 은퇴를 고민하고 있었던 만큼 언니에게 ‘멋진 퇴장선물’을 주고 싶었던 이효정은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16일 하루 동안 언니와 동생은 마음을 다독거리느라 하루를 다 보냈답니다.
17일날 중요한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경원은 경기를 모두 끝냈지만 이효정은 경기가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일곱살 연하 남동생 이용대(20)와 짝을 이뤄 출전해야 하는 혼합복식 결승이었습니다.
결국 마음을 다잡은 이효정은 멋진 한판승부를 보여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이효정이 한 말은 바로 “경원언니 사랑해”였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이경원에게 바친다고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난뒤 이경원은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뒷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은메달의 아쉬움은 벌써 잊은 듯 했습니다.
이경원이 여자복식 경기후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바로 이효정에게 달린 ‘악플’이었습니다.
이경원은 “발목을 다쳐서, 몸관리를 하지 못한 것은 저인데 이상하게 효정이에게 악플이 달렸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라며 “근데 어제 경기에서 너무 효정이가 잘해줘서 너무 자랑스러웠다”며 흐뭇한 미소로 동생을 바라봤습니다.
은퇴를 준비하려했다는 이경원은 “효정이에게 미안해서 은퇴를 미뤄야겠다”고 말합니다.
이효정은 “꼭 경원언니랑 런던올림픽에서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합니다.
친자매 같은 두 선수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꼭 나란히 웃을 수 있게 되길 기원해봅니다.
백 길 현
CBS 올림픽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