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바보들의 '얼치기 충성'
[김덕남 칼럼] 바보들의 '얼치기 충성'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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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딱지 덕에 유명세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 졌다”. 바이론이 말했다. 장편 담시(譚詩)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가 문단의 주목을 받자 한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지는 ‘벼락치기 인기’를 말할 때 가끔씩 인용되기도 한다.

비유를 비틀어 말하자면 요즘 대한민국에도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진 책’들이 많다. 무려 23종이나 된다. 갑자기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국방부가 마케터다. 국방부가 뜬금없이 ‘불온(不穩)서적‘으로 지정하여 군대 반입을 금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여기에는 대중성 높은 인문교양서와 십 수 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도 있다.

제주사람 현기영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포함됐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청소년을 위한 필독서로 추천됐던 소설이다. 그래서 이미 독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아 유명세가 붙은 책이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 딱지를 붙였다. 그 덕(?)에 덩달아 또 다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금지된 불온서적’의 대박 행진. 역설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금지된 것에 대한 유출

사람의 심리는 묘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

말하지 말라고 하면 입이 간지러워 더는 못 참는다. 소문이 새끼 치는 이유다. ‘낙서금지’ 화장실 벽면은 낙서로 시커멓다. ‘청개구리 현상‘이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금지 압력이 강력할수록 더 강력하게 금지를 깨려는 심리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 했다. 반대가 심할수록 죽음까지 따라갔던 사랑이야기에서 나왔다. 금지에 대한 반발 심리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때문이라고 한다.

‘금지된 것에 대한 유혹’ 때문이든, ‘금지의 매력’ 때문이든, 약간 과장을 붙이자면 지금 곳곳에서는 ‘한여름 밤의 독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때 아닌 독서 열풍이다.

국방부의 금서(禁書) 선정 효과다. 그래서 특정도서 홍보에 국방부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좋은 책 홍보해 주신 국방부에 감사드린다”는 네티즌들의 조롱도 인터넷을 누빈다.

 이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이번 국방부의 ‘금서작전’은 실패다.

 전략에서, 전술에서, 전투에서 모두 그렇다.

禁書는 체제유지 수단

금서(禁書)는 도덕성과 정당성 없는 권력자의 체제유지 수단이다.

 사상과 언론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기원전부터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점철되어 왔다.

로마황제 ‘칼리굴라’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읽지 못하게 했던 것도 그렇다.

모든 책들을 불사르고 지식인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도 체제유지와 권력안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국방부의 금서목록은 이런 것들과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내용의 책들이어서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책 때문에 체제를 유지 할 수 없는 약체 권력이나 국가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물관에 들어갔던 ‘매카시즘’을 데려와서 곳곳에 빨간 페인트를 칠한다고 국민적 사상이 쉽게 흔들린다고 생각했다면 이 또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금서파문‘은 열심히 무식의 내공을 쌓은 청맹과니 바보들의 ’얼치기 충성‘이 낳은 코미디다.      

김  덕  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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