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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생태계가 기후 온난화와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제주조릿대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한라산은 저지대에 난대성 식물이 자라고, 고지대에는 한대성 및 고산식물이 분포한 세계적인 식물군락지이다.
그러나 기후 온난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명확히 구분됐던 이러한 식물 분포대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저지대의 식물이 고지대까지 올라가 고지대 식물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식생의 보고(寶庫)로서의 명성도, 심지어 천연보호구역이란 말을 듣지 못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하긴, 기후 온난화는 전 세계가 겪는 21세기 최대 현안이다.
남극의 빙하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그 어떤 과학의 힘도 무기력할 뿐이다.
한라산의 식생환경 변화 역시 크게는 기후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제주조릿대 잠식 등 지금의 생태계 교란 현상 정도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연의 현상인데, 어쩌란 말이냐’며 한숨만 쉬면서 바라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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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릿대 군락지에서의 말 방목이 조릿대의 왜성화 현상과 서식 밀도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는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의 발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2006년부터 농촌진흥청 난지농업연구소와 공동으로 제주시 열안지 목장 약 16ha의 조릿대 군락지에 말을 방목한 결과 조릿대의 크기가 작아지고, 서식 밀도 수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릿대가 왜성화되면서 기존 다른 자생식물의 개체 수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조릿대의 1m당 밀도가 방목 전 67.3개에서 방목 후에는 34.6개로 거의 절반 정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릿대의 키, 줄기의 굵기도 각각 70% 및 55%나 줄었다고 한다.
겨우 5마리의 말을 매해 8~11월까지 4개월 간 2차례 방목한 결과 얻은 성과다.
바로 이것이다. 인위적인 노력만 하면 지금의 한라산 식생환경 교란 정도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더욱이 조릿대 때문에 식생이 중단됐던 주름조개풀과 졸방제비꽃, 애기나리 등 초본식물이 다시 소생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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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목한 말이 나무줄기를 갉아 먹는 습성 때문에 다른 식물에 피해를 줄 우려도 있지만, 이 또한 적정한 방목과 관리만 잘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문제다.
더 더욱 심각한 일은 이미 한라산 정상 부근에까지 조릿대가 잠식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봄철 한라산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철쭉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더 이상 조릿대의 잠식을 지켜 보고만 있어선 안 될 이유인 것이다.
제주도는 조릿대의 번식 시기에 이 곳에도 적정 수의 말을 방목해 고지대 식물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칫, 말만 풀어 놓을 경우 보호돼야 할 식물까지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관리인을 상주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이 번 기회에 제주조릿대의 식음료 및 약용화 방법에 대해서도 좀 더 활발한 연구가 이뤄졌으면 한다.
이미 조릿대는 약의 성분을 지닌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잎은 차(茶)로 만들어 음용할 수 있고, 줄기와 뿌리는 당뇨병과 고혈압, 위염, 간염 등에 효과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민간요법으로, 의학적 판단과는 다르다.
따라서 제주조릿대가 약재로서의 이용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학적 규명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