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리병원’ …3년전과 2년후
[데스크 칼럼] ‘영리병원’ …3년전과 2년후
  • 정흥남
  • 승인 2008.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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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 고수들은 판 막판 종종 패싸움을 결행한다.

대국의 후반부로 갈수록 패의 도입은 판세를 일대에 뒤바뀔 수 있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반전시키곤 한다.

특히 일부 고수들은 전황이 불리할 것으로 예견될 경우 은밀하게 대형 패 공장을 마련해 두고 결정적인 대마사활을 건 싸움을 결행한다.

이 경우 분위기상 역전이 불가능 할 것으로 여겨졌던 판조차 향방을 알 수 없게 된다.

바둑에서 흔히 패를 만들다 보면 예기치 않은 꽃놀이패가 생긴다.

패를 만드는 편에서는 말 그대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인 꽃놀이패는 패를 당하는 측에서는 상대의 패를 뻔히 알면서도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패를 보여주고 치는 ‘게임’을 일컫는 꽃놀이패는 한쪽은 져도 별다른 손해가 없지만 반대편은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돌연 영리병원 문제가 제주사회의 ‘중심문제’로 자리 잡으면서 바둑의 꽃놀이패가 회자되고 있다.

영리병원 도입을 제창한 제주도정이 꽃놀이패를 쥔 채 말 그대로 ‘도랑 치고 가재 잡기를 한다’는 풍문들이 그럴싸하게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주민투표 때와 유사한 현재

“김태환 지사가 5.31지방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공무원을 통한 조직적인 유권자 동원에서 타 후보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의 당선에 일등공신은 2005년 7월 실시된 (제주도행정계층구조개편에 따른) 주민투표 과정에서 재가동돼가면서 정비되어 나간 공무원 동원의 조직력이다”

“김 지사는 주민투표에서 자신의 조직을 공식적으로 재가동 할 수 있는 기회를 향유했으며 이러한 김 지사의 조직력은 ‘박풍’이나 ‘삼성 CEO의 신화’를 무색케 할 만큼 잘 다져진 조직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2006년 5.31지방선거 때 당시 열린우리당 진철훈 후보의 정책자문단장으로 직접 선거에 참여했던 양길현 제주대교수가 선거직후 ‘5.31지방선거 평가토론회’에서 발표한 주제발표문의 일부다.

제주도를 비롯한 제주시와 서귀포시 등 지방정부가 말 그대로 ‘영리병원’에 올인했다.

김 지사가 직접 읍.면.통장, 이장단 회의에서 나가 영리병원의 당위성을 역설한 뒤 지역별로 찬.반 결과를 집계하겠다고 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 각 실.국장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에서 열리는 자생단체 회의 등에 나가 영리병원 도입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일부 단체들이 영리병원 지지에 가세, 시민단체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제주사회는 영리병원 찬성과 반대진영으로 양분돼 자연스럽게 서로의 ‘세’가 결집되는 모습이다.

2005년 7월 27일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대한 주민투표 상황과 흡사한 모습이 정확히 3년 만에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사회 또 다른 ‘블랙홀’로

우연이 일치인지 몰라도 김 지사는 ‘주민투표 승리’의 3주년이 되는 오는 27일까지 영리병원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마무리 하겠다고 선언했다.

2년 후인 2010년 6월 2일에는 제5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제주사회는 벌써부터 차기 도지사 선거전이 수면 아래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의 영리병원 문제는 ‘정책’보다 ‘정치’라는 성격으로 변질되는 인상이 짙다.

시민사회단체와 공무원 노조, 일부 양심 있는 제주도의원들의 반대와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 제주도정은 벌써 상당수 관변단체 등의 지지선언을 유도하면서 지원세력을 자연스럽게 늘리는 부수입을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뇌교육’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적이고 끈질기게 자행되고 있는 공무원 교육은 관료사회의 동요를 막는 동시에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이들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전국 최고의 소비자 물가상승과 지역 내 각 분야에서 일고 있는 갈등, 고유가로 인한 각종 파열음 등 숱한 민생들이 고스란히 묻힌 채 영리병원 찬,반 논쟁에만 몰입하는 제주사회.

서민들의 삶의 무게는 갈수록 버거워지고 사회전체의 발전은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다.

실체조차 불투명한 영리병원이라는 블랙홀로 제주사회가 함몰하면서 제주의 역사가 이번에는 또 어떤 형태로 뒤틀리게 기록될 것인지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정  흥  남
편집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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