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간첩’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았던 강희철 씨가 지난 23일 제주지법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돼 명예를 회복하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강 씨가 불법연행을 기점으로 무려 22년만에 간첩의 누명을 벗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무기징역 확정 판결 당시 대법원 재판부 대법관이었던 박우동 씨(현재 변호사)였다.
1993년 대법관에서 퇴임한 박 씨는 1년 뒤 그의 회고 에세이 ‘판사실에서 법정까지’에 ‘달갑지 않은 공안사건의 주심’이란 제목으로 강희철 씨 간첩사건을 처음 언급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이 사건) 주심이었던 나로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건 하나가 있다”며 서두를 꺼낸 뒤 “기록을 통해 감지되는 조작의 분위기 때문에 그냥 모른채 넘어갈 수 없어서 합의의 자리에서 고법이 다시 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결국 상고가 기각되고 말았지만, 두고 두고 꺼림칙해서 잘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당시 검사 출신 대법관의 고집을 도저히 꺾을 수 없었고, 다른 대법관들도 거의 방관적인 태도를 취해 (결국) 무기징역으로 낙착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출간(2003년)한 에세이 ‘변호사실 안팎’에서 ‘강 피고인을 구해내지 못한 판사’라는 제목으로 “또다시 (뒤늦게 이런 글을 쓴들) 그 사람(강 씨)이 진 무거운 짐을 덜 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 어떤 멍에라도 지고 살아가는 것이 편해 쓰게 됐다“는 말로 잘못된 판결에 대해 후회했다.
결국 당시 주심 대법관이었던 박 씨의 이 글은 강 씨의 구명운동에 큰 불을 지폈다.
특히 천주교 제주교구사제단 등과 인권변호사인 최병모 변호사 등이 적극 강 씨 구명에 나섰다.
뿐만아니라, 강 씨가 제주지법에 재심 청구를 낸 후 제주지검도 재심의 타당하다는 의견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검 이승한 형사2부장검사(공안 담당)는 25일 “2005년 지법이 지검에 이 사건 재심 개시에 대한 의견을 물어 와 지검도 85일간 경찰 불법구금 사실을 들어 재심을 해야 한다고 밝혔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처럼 인권을 유린하는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는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검의 전향적인 자세도 주목할 만하다.
재심 의견을 낸 데 이어 결심 공판에서도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는 말만 했다.
구형량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미 거짓자백과 증거가 없는 사건임을 검찰도 인정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