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동창 여럿은 일본에서 생활하며, 나름대로 모임도 갖고 가끔 누가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꼬박꼬박 회비를 납부하는 성의도 보이고 있다.
환갑을 갓 넘긴 나이들이지만 가난을 극복하려고 그곳으로 건너가 노동으로 연명하며 생활의 뿌리를 내린 아름다운 동무들이다.
이제 일본에서 노동으로 연명하며 터전을 잡고 노년을 보내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소위 ‘프롤레타리아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게공선>(蟹工船)이 인기를 끌면서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캄차카 연해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가혹한 노동조건에 분노를 느낀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일하는 빈곤층 워킹푸어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저임금의 비정규 젊은이 프리터의 현실은 바로 <게공선>의 세계와도 통한다는 사실이 더욱 그렇다.
프리터 생활에서 몇 년 동안 빠져나오지 못한 현실의 어느 젊은이는 이 소설이 절실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소설의 주인공들이 공동의 적을 맞아 함께 싸우는 모습이 너무 부럽게 느껴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게공선>은 지금부터 79년 전인 1927년, 소설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仁)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기 4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미 러시아어? 중국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체코어? 베트남어 등으로 번역되어 애독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여 싸웠던 일본인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필자는 그 책이 1987년 6월에 한국에서도 출판된 사실을 인테넷에서 확인하고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번역자는 부산에 사는 이귀원(李貴源)씨이며, 고서점 불로그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재빨리 신청하면서 다시, 일본에서 생활하는 내 초등학교 동창들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일본사회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세계화의 그늘에 ‘숨겨진’ 빈곤 대국 일본에 눈을 돌리라는 명령이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본은 지금, 기존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빈곤 대열로 추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13.5%로 회원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생산연령인구 소득분포 중앙치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15~25살 젊은이 둘 중 한 명, 전체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근로소득자 평균급여도 9년 연속 감소추세라는 보도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를 보면 생활보호 대상자 수도 1995년 88만 명을 최저점으로, 최근 십여 년 계속 늘어나 2006년에는 151만 명에 달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상당수가 대상에서 누락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대상자 수는 훨씬 많다는 지적이다.
실제 10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생활보호 대상이라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저축 없는 가구수’도 23.8%로 10년 전의 약 4배로 늘었다.
어느 노동자는 “날품팔이 노동자집결지에서 25년간 일일노동을 했는데 그때 같이 있던 90%가 현재 노상에서 생활하고 그중 절반은 죽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변호사연합회의 전화상담 조사를 보면, 자치단체에서 생활보호 신청을 거부한 사례 중 66%가 생활보호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큐슈시에서는 생활보호 지정을 박탈당한 사람이 굶어죽는 사건이 3년 연속 발생했다.
사후 1개월의 미라로 발견된 52살 남성이 남긴 일기장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죽으란 말인가”라며 “주먹밥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구절을 남겼다.
생활보호 지정을 거부당하고 가족이 동반자살을 시도하거나 생활보호비가 나오지 않을 것을 우려해 부모의 주검을 집안에 방치하는 비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업급여가 3개월 만에 끊긴 노동자는 월세 3만 엔을 내지 못하자, 노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보도도 있었다.
소위 일본은 경제대국 중에서도 안전사회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기본적인 삶의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보도는 우리들을 놀라게 할 뿐이며, 그래서 그곳에서 생활하며 꼬박꼬박 동창 회비를 보내주는 옛 동무들이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