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그래, 이제는 촛불을 끄자"
[김덕남 칼럼] "그래, 이제는 촛불을 끄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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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바다 밝힌 경이로운 불빛

‘6월10일 촛불’. 위대했다고 했다.

경이로운 장관(壯觀)이었으며 두려움이었다고도 했다.

수십만 명이 이어진 뜨거운 촛불 물결 속에서도 비폭력적인 평화의 빛으로 일어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대통령은 “촛불 행렬을 보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했다.

세 번이나 국민에게 머리 숙여 잘못을 빌었다.

독선과 소통부재에 대한 반성과 재발방지 약속까지 했다.

청와대 비서실 전면 개편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먹거리 안전을 지키려는 순수성과 자발적 참여, 열정적이었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비폭력 평화 시위에 세계도 놀랐다.

촛불 집회 사진만으로도 미국은 경악했다.

그래서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는 추가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공화파 개혁 정치가 ‘끌레망소’는 “나라란 땅과 바위나 하천, 산림 농토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했다.

“사람의 마음을 한 데 묶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알리며 문명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이념으로 형성되는 것”이라 했다.

국가는 백성의 마음을 묶는 힘을 말함이다.

이번 촛불은 그래서 그러지 못하는 국가를 대신했다.

지지리 못난 정부를 대신해, 민심을 하나로 묶어 촛불을 밝힌 것이다.

이제는 국회로 판을 옮겨줘야

그러나 이제는 촛불을 꺼야 한다.

자발적 순수성이 시꺼먼 그을음으로 더럽혀 질까 봐서다.

폭력의 유혹이, 불순한 악의가, 충동적 선동이, 촛불의 경이로움을 꺾어버리지 않을까 불안해서다.

“세계 정치사의 획을 긋는 계기가 됐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형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이제는 촛불을 끄고 촛불의 심지를  갈무리 해둬야 한다.

그래뒀다가 예(例) 들었던 ‘끌레망소’의 말처럼 ‘야만적 힘이 유일한 재결자(裁決者)임이 분명해 졌을 때, 관용과 평화와 자유의 표어가 증오의 외침에 자리를 양보하려 할 때’, 또다시 심지를 올리고 촛불을 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번 촛불 집회가 ‘그리스 아테네 이후 직접민주주의의 구체적 표상’이라는 논리의 비약을 일정부분 수긍한다 해도 5천만국민이 직접 국가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대의민주제도가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촛불을 꺼야한다.

촛불민심을 국회에서 다루도록 판을 옮겨줘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한꺼번에 다 얻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탐욕은 죄를 낳고 파국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 이후는 파멸과 죽음뿐이다.

신뢰상실이 총체적 위기 잉태

이번 ‘촛불‘은 정치ㆍ언론ㆍ사회 전반에 보낸 날카로운 경고음이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제대로 본령을 지키지 못했기에 분출한 것이다.

신뢰의 상실과 소통부족, 매개기능의 총체적 한계가 위기를 부른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민이 뽑아 세워 갓 100일을 넘긴 정부에 시위주도 세력이 “명령한다”고 오만하게 조롱을 한다면 나라의 품격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국민의 투표로 선택한 대통령을 향해 ‘쥐 새끼’라는 못된 상소리를 해도 괜찮은가.

정권을 타도해서 다음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언론도 마찬가지다.

론의 지향은 ‘진실에의 충성’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캐내고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쇠고기 광우병 보도’에서 언론은 이 같은 본령을 제대로 지켰는가.

허위ㆍ과장ㆍ악의적 선동과 편파보도ㆍ논평은 없었는가.

야당 등 정치권이 촛불집회에 기웃거리는 기회주의적 작태는 또 무엇인가.

국회를 떠나 ‘촛불정치‘를 하겠다면 의원직을 버리고 떠나야 옳다.

 그들에게서 어떻게 대의민주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실정(失政)을 거듭할 때 국민이 일어서 경고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는 곤란하다.

이명박 정부에 준 촛불의 경고는 무서웠고 충분했다.

그러기에 이제는 촛불을 끄고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김  덕  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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