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씨 '간첩조작 사건' 어떻게 이뤄졌나
강희철씨 '간첩조작 사건' 어떻게 이뤄졌나
  • 김광호
  • 승인 2008.0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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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연행-고문-허위자백-'유죄'로

강희철 씨 간첩 조작 사건의 무죄 판결은 2006년 6월 제주지법이 강 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예고됐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수사기관의 불법감금 등으로 인해 형이 확정된 경우 재심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강 씨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긴했지만, 재심이유(420조)에 해당돼 재심이 시작됐다.

결국 법원의 재심 개시는 이 사건 확정 판결이 경찰의 불법연행-가혹행위-허위자백 등을 근거(증거)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내린 결론이다. 따라서 재심 결정때부터 이 사건의 결론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강 씨가 1975년 일본으로 밀항해 조총련 산하 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4월 반국가단체 구성원인 A씨에게 포섭당해 지령을 받기위해 북한으로 탈출, 간첩교육을 받으면서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으로 돼 있다.

뿐만아니라, 강 씨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 와 A씨의 지령을 받아 간첩 수행을 위해 남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방법으로 잠입한 후, 부산국군통합병원 등의 규모와 근무병력 등 국가기밀을 수집, 탐지해 A씨에게 보고했다는 등의 내용으로 작성됐다.

그러나 재심 재판부인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는 '이 사건 공판조서 중 피고인의 자백을 믿을 수 없고(허위자백), 간첩 혐의를 의심할 만한 정보나 확보된 증거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문에서 드러난 경찰의 불법행위는 실로 충격적이다.

물론 강 씨의 주장과 일부 참고인 등의 진술.증언에 의한 것이지만, 경찰관들로부터 각목 등으로 폭행과 협박.고문을 받았으며, 자백하면 3~5년 정도의 징역형만 선고받을 것이라는 말에 속아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돼 있다.

또, 당시 경찰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들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강 씨를 계속 지켜보면서 간첩 혐의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감시했고, 기소된 이후에도 공판정에서 계속 지켜 봐 심리적인 위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강 씨의 친척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려고 하자 경찰관들의 방해로 인해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경찰의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과 조작된 조서 등에 의해 검찰이 기소했고, 법원이 이를 근거로 무기징역형을 확정 판결했다.

따라서 경찰.검찰의 불법행위는 물론 1, 2, 3심 법원도 인권 유린 판결을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법원이 유죄'라는 지적을 면치못하게 됐다.

강 씨는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소감을 통해 “이런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다.

 그 동안 재판진행이 안 될까 봐 원망도 많이 했지만, 참고 기다린 결과”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한편 이 사건 변호인인 최병모 변호사는 “독재정권 시절 재일교포를 상대로 한 조작간첩 사건의 첫 무죄 케이스”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과거사정리조사위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관련 조작간첩 사건이 100여건에 이르고 있고, 이 가운데 제주도와 관련된 사건이 30% 정도 된다”며 “강희철 씨 재심 무죄 판결은 앞으로 조작된 진실이 밝혀지는 계기기 될 것” 라고 말했다.

강 씨 재심 무죄 판결은 유신 정권에서 5공 정권 사이에 이뤄진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재심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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