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랑 열정이 필요하다"
아직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다.
서울에서, 제주에서, 전국 주요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이어지는 촛불집회는 한 달이 넘어도 꺼질 줄 모르고 있다.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안타깝게도 촛불연기에 그을려 시커멓다.
가슴은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지 모른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백성들 마음도 검게 그을리기는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처럼 ‘말씀이 아니게 구겨지는 대통령 리더십’이 희롱당하는 것과는 달리 제주에서는 한 지역 일꾼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이 조용히 전개되고 있다.
전직 제주도지사들을 망라한 학계, 종교계, 상공인, 정계, 여성단체, 시민단체 등 각계 원로들이 앞장선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사면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명청원의 글을 통해 “제주의 발전을 위해 신전지사의 미래 비전과 탁월한 리더십과 기획ㆍ추진혁, 그리고 제주사랑의 열정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옥살이 하는 사람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뜻 와 닿지 않는 뉘앙스다.
위기의 대통령 리더십을 생각하면 묘한 느낌이 든다.
왜 범죄자를 풀어달라고 할까
신구범 전 지사는 누구인가. 기업체로부터 3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법정 구속돼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판결이 올곧았다면 엄연한 범죄자다.
그런데 이 같은 범죄자를 “풀어 달라”고 각계각층지역원로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의 리더십이 출중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다.
이 원로그룹에는 그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전직지사도 포함됐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지역 원로들 심정의 일단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신전지사는 죄가 없는 데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개연성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전지사의 재판을 지켜봤던 이들 사이에서는 ‘정치 보복적 차원의 괴씸죄’에 걸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알려진 바, 1996년 신전지사가 받았다는 ‘뇌물 30억원’은 돈을 줬다는 사람이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 전액 사용됐다. 30억원 기금출연은 돈 임자의 계좌에서 복지법인계좌로 입금됐다.
지금 이복지법인 양로원은 돈 임자의 지인에 의해 잘 운영되고 있다.
은밀성을 생명으로 하는 뇌물이 어떻게 이렇게 대명천지에 활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로 미뤄 신전지사로서는 냄새도 맡아보지 못했던 30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문제 는 이 황당하고 아리송한 뇌물이 진짜뇌물로 둔갑해 신전지사를 옭아매 억울한 옥살이를 시키고 있다는 연민의 정서가 팽배해 있다는 데 있다.
정치보복차원의 괘씸죄 적용
1996년에서 2000년 사이 축협중앙회장 시절 ‘목숨을 건 정부의 농ㆍ축협 통합 반대 운동’에 대한 정치 보복적 차원에서 “30억 뇌물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신전지사 주변의 주장이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이 사건 재판이 항소심인 고등법원과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유죄로 인정한 것에 대한 설왕설래도 많다.
뇌물을 줬다던 사람은 뇌물제공 주장을 허위라고 인정했다.
관련 증인도 거짓이라 증언했다.
그런데도 뇌물 제공 주장을 증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던 법원이 같은 사람의 반대주장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증거제일주의로 표현되는 ‘법의 정의(正義)’가 “뒤틀려 버렸거나 실종돼 버린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많다.
법의 정의에 대한 일각의 불신은 30억 뇌물 수수를 판결하면서 한 푼도 추징하지 않은 데서도 나온다. 경험한바, 일반의 법상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 도주우려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데도 법정구속을 해 그가 추진하던 각종 사업을 붕괴시켜 버린 것도 법적용 형평성 논란의 구실이 될 수도 있다.
제주지역 원로들의 신전지사 석방운동은 그래서 그의 리더십을 아까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연민(憐愍)의 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열사람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 는 법언(法諺)이 가슴에 차오르는 아침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