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3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축제 분위기가 돼야 할 정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으로 오히려 성난 민심을 추스러야 할 위기에 봉착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닻을 올린 지 100일도 안 돼 국민들의 저항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것도 운동권과 재야와 야당 등 특정 계층이 아니라, 초ㆍ중ㆍ고등학생과 학부모, 주부, 일반 시민 등이 망라된 사실상 전 계층으로 부터의 저항이라는 데에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했다. “군주(대통령)는 민중이 무슨 과오를 범하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민중이 저지른 과오는 통치자 쪽의 태만에서 나온 것이거나, 통치자가 저지른 것을 그들이 답습하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이 대통령은 국민의 촛불 시위를 불평하고 지켜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소통 부족이 국민의 분노를 유발시킨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것 만은 아니다.
국민들은 공론을 거치지 않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과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광우병의 우려가 있는 부위를 거부하지 않은 전면적인 수입 결정, 그리고 재협상을 원하고 있는 데도 장관 고시를 해 버린데 대해 격분하고 있다.
물론, 촛불 시위 인원이 하루 수 십 만명에 이를 정도가 아니어서 전체 국민의 목소리가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 나가지 않고도 심정적으로 촛불 시위에 지지를 보내는 말 없는 국민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통치자(군주)는 어떤 이유로 민중의 미움을 살까? 가장 큰 이유는 민중이 제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가는 데 있다.
인간은 자기가 가장 소중히 하는 것을 빼앗겼을 때의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상에 필요한 것일 때 더욱 그렇다”.
국민들은 지금 이 대통령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가장 소중한 건강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걱정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솔직히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지, 위험한 지는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안전하다는 강변도, 국민들의 불안하다는 항변 모두 수용하기가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와 내장 등 부산물에 대한 광우병의 우려가 있다는 점은 미국도 인정하고 있다.
자국내에서도 이 부위의 식용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내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민심 수습책을 제시할 지 비상한 관심을 끈다.
들리는 바로는 새 정부 출범 후 내부 갈등과 소통 부재를 야기해 온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적 또는 부분적인 수술이 가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진과 쇠고기 관련 장관 등 일부 장관을 바꾼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과 장관 고시로 인해 야기된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사라질까.
‘국민과의 소통 부재’가 원인이라는 어설픈 판단아래 청와대 또는 정부에 대국민 홍보 기구를 만든다고 등 돌린 민심이 돌아설까.
모르긴 해도 결과는 ‘아니다’일 것이다.
사태 해결의 본질은 미국과의 재협상이다.
물론 이 대통령의 선택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국제법상 흔한 사례가 아닌 데다, 무역마찰도 예상된다.
게다가 양국이 FTA를 비준 처리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도 남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뒤에는 국민이 있다.
국민들은 국민이 원하는 길을 가려는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할 것이다.
상대국인 미국 역시 대부분 한국민의 뜻이 그런데 막무가내로 재협상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전면 수입을 거부하겠다는 게 아니라,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쇠고기만 받아들이겠다는 데 이것마저 안 하겠다면 국제법 질서 이전에 우의와 신의를 바탕으로 한 동맹국의 도리가 아니다.
내일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의 화두는 “쇠고기 재협상”이라야 한다.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들은 적어도 “미국과 협의해 다시 협상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울러 이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고, 장관 고시 관보 게재도 보류하겠다는 해법 제시를 고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런 선언을 할 경우, 100일 간의 악몽을 털고 다시 태어나 많은 국민의 성원을 받는 믿음직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