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마누라 밥
[세평시평] 마누라 밥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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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가 집 밥이란 말을 만났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느낌이었다.

식당이 아니라 가정에서 먹는 식사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만일 가정식이라고 했다면  피식 웃음이 나왔을 듯하다.

식당 밥을 매식이라고 한다.

매(賣)라는 한자어는 돈을 주고 산다는 단순한 뜻인데 매춘이라는 단어 까닭인지 때가 묻어, 듣기에 편치 않다

 외식이란 말이 있다.

집밖에 나가서 먹는 음식인 점에서 같은 뜻이지만, 뭔가 호사스럽고 낭만적 뉘앙스가 풍긴다. 말이 주는 정서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

 사실 오래 매식을 하면 위장이 탈나기 쉽다.

매식 자체도 문제려니와 매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주변 환경이 한 몫 하고 있을 터이다.

밥을 사 먹는다는 건, 뒷바라지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챙겨 주는 사람이 없으면 습성도 나빠지기 쉬워 이래저래 건강상의 문제를 만들 것이다.

 매식의 장점은 쉽고 편하게 식사를 해결 한다는 데 있을 것이나, 이윤을 목적으로 차리는 밥상인지라, 조리에 쓰는 재료의 질이 떨어지고, 맛을 내는 조미료의 과용을 생각할 수 있다. 싼 값의 재료를 찾게 되고 조미료로 맛을 덧칠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더구나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기른 콩나물, 믿을 수없는 방법으로 말린 건어물 건채소, 물들인 고춧가루, 방부제를 첨가한 공장식품류까지 불량한 식재료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호화로운 장소의 요란해 보이는 음식도, 냉동 생선에 가공식품들을 모양 좋게 꾸며놓기 일수라서 먹고 나면 뱃속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최근에는 외식 산업이 엄청 발전해서 먹을 만 한  음식도 있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퓨전요리까지 개발되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바쁜 세상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집 밥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외식산업이 고공행진을 할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외식 문화가 판을 치더라도 정성으로 준비한 집 밥의 의미가 퇴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패스트푸드의 단점이 알려지면서 발효식품이 많은 한국 음식을  슬로우 푸드라는 이름으로 선호하게 되고 맛은 물론 소화나 흡수율이 높은  한국 음식이 세계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남자에게 집 밥의 원조는 물론 어머니다. 어머니 보다 더 자식 밥상에 정성을 들일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도 길게 오래 먹는 음식은 마누라 밥이다.

음식을 잘하는 여인은 소박맞지 않는다는 옛 말이 있는걸 보면 밥이 생명임을 실감케 한다.

 소설 속의 남자는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누리고 살지만, 아내의 입김이 드세어서 자기 뜻을 접고 사는 남편이다.

그는 늘 아내가 해 주는 밥이 먹고 싶은데 그 소원은 묵살되고 집에는 도우미 아줌마가 있어 아내는 살림에 관심조차도 없다.

그렇게 살던 그들이 종내는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혼한 후에야 여자는 열심히 요리를 배우며 혼자 사는 집에서는 음식을 해 먹는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어느 날, 전 남편을 우연히 만난 그녀는 남자를 집에 까지 대려와 밥을 한 끼 대접한다.

남자는 감격하여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차갑다.

 “이상하게도 당신을 위해 밥을 짓고 싶지는 않았어.”그 말에 남자는 깊이 상처 받는다.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참한 심정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면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한다. 남자의 현존을 돕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존재를 기뻐하는 곳에서 시작되니까.

“당신을 위해 밥을 짓고 당신 옷을 빨래하고 싶어.”

사랑이 가슴에 차오르면 모든 여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만다. 

 오래전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였던가. 포성이 울리는 전선에서 머리를 빡빡 깎인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르는 데 ‘당신을 위해 양말을 씻고 밥을 짓겠다.’ 고 수줍게 고백한다.

그 절절함에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남자를 위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사랑은 시작도 하지 않았거나 이미 끝나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자기를 위해 빨래하고 밥 짓는 여자를 두고 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에게 빠진 남자는 쓸개를 빼낸 자리에 풍선을 집어넣고 다니다가 언젠가는  펑하고 터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아무리 밖에서 잘 나가는 남자나 여자라도 그를 위한 밥상이 준비되지 않는 집에서 산다면 불행한 사람이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여자는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무라지 말라.

오기를 부려 골탕을 먹이려는 게 아니다.

의욕을 잃으면 에너지가 소진 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여자에게 사랑은 활력인 까닭이다.

화가 누그러지고 반성과 후회의 여과를 거친 후에 사랑의 기미가 돌아오면 청하지 않아도 여자는 부엌으로 간다.

 세상엔 철 안든 남편도 많아, 날마다 차리는 마누라 밥상의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시 한다. 

 매 끼니 마다 <무엇을 차려야 하나.> 머리를 쥐어짜는 아내의 고민을 알 턱이 없는 그들은 마누라 밥이 사랑도 함께 차린 특별 메뉴라는 걸 모르고 지나친다.

 독자여, 당신의 퇴근길에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면 당신은 어쨌거나 행복한 사람이다.
 “여보 식사 하세요.”

이 목소리가 어느 날 문득 끊기고 나면, 남자의 인생은 쓸쓸한 쇠락의 길이 아닌가!

공   옥   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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