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 F.M 라디오에선 사라사테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그 애조 어린 선율이 가슴을 흔든다. 내가 귀 기울여 듣는 동안 저 음악은 나를 위한 연주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세상의 모든 일이 나를 위해 있어! 서늘한 깨우침이 왔다.
독자여 생각해 보라. 옛적부터 현인들이 당신을 위해 진리를 가르치고 지금까지 세상의 숱한 종교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도를 전파한다.
중생이라는 이름의 당신을 위해 사찰에선 종이 울려 퍼지고, 교회에서는 새벽 찬송이 힘차다.
조종사는 당신을 위해 비행기를 조종하고, 선장은 배를 운항하고 상인은 먼 곳 가까운 곳 가리지 않고 물건을 날라 온다.
세상이 온 통 당신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할 준비로 분주하다. 어떻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 4월 중순엔 학생문화 회관에서 새우 란을 전시했었다.
전국 규모의 동우회원전이라 풍성한 분량에다 색색의 고운 새우란 분이 줄을 서서 저마다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화사함이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일 년 내 공들여 가꾼 난 꽃들을 찬탄하며 보았다.
뒤를 이어 한라산 자생 식물 전시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는데 자잘한 풀포기 작디작은 야생화를 화산 석에 키워 운치와 풍광이 가히 탄복하게 했다.
애지중지 돌보며 정성을 다한 이들의 솜씨를 공짜로 즐겼다.
그들은 관객의 감탄과 칭찬만으로 기뻤으리라.
현대는 공연이나 전시회가 넘치는 시대다.
발품만 팔아도 여러 유형의 관람이 허락되어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이렇게 대중을 위한 수고와 노력의 결집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류사의 초기부터 자신만 아니라 함께하는 누군가를 위해 사냥을 하며 공동의 삶을 영위해 왔다.
처음엔 가족, 점차 씨족과 부족과 민족으로 그 범주가 커가면서 무리의 지도자가 생기고 그를 옹위하여 국가를 이루기까지 발전해 왔다.
지도자는 소속된 공동체내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끌기 위해 용맹과 지혜를 발휘하고, 사람들은 그의 지배와 보호를 기꺼이 수용하며 운명을 같이했다.
말하자면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엮이며 살아 온 것이다.
무리가 없는 지도자, 받는 자가 없는 선의, 배울 자가 없는 선생, 듣는 이가 없는 연주자, 관객이 없는 배우, 먹을 사람이 없는 음식이 의미가 있을까.
만드는 자, 가르치는 자, 베푸는 자, 연주하는 자, 모두 그 가치를 들어내 주고 인정 해주는 대상이 있어 빛이 나는 것이다.
해서, 누구든지 관객이 되는 것으로, 받는 자로, 배우는 자로, 먹어주는 자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무대 위의 저 뛰어난 사람들은 결국 청중인 당신을 위해 수년간 훈련과 연습을 거듭한 셈이 아닌가.
당신은 감탄하며 그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기만 하라. 구태여 그 사람의 재능을, 미모를, 부를, 선망할 필요가 있는가.
당신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발명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보아주고, 읽어 주고, 써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들은 밤 낯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도 언제든지 주는 자로 ,연주자로, 만드는 자로, 변신이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만 당신의 의지와 노력이 성패를 가름할 뿐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빠른 정보 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행적을 훤히 알게 되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나 빈곤감에 풀이 죽지만, 관점을 바꾸면 당신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절로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당신은 얼마의 관심과 시간과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그들의 성과물을 즐길 수가 있으니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재능이 좀 없고, 가진 게 모자라고, 내세울 것 없어도, 도처에 당신의 박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의 가치는 그 것만으로 이미 정점에 놓인다.
만약에 당신이 받기만하고 누리기만 하는 게 조금이라도 미안하다면 당신도 베풀 수 있고 고 도울 수 있고 줄 수 있는 자로 변화하면 그만이다. 불교에서는 바로 당신이 재물이 없더라도 일곱 가지 선행이 가능하다는 걸 가르친다.
<얼굴에 화색을 띠우는 일, 말에 친절을 담는 일, 따듯한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 일, 눈으로 호감을 표시하는 일, 묻는 말에 소상히 가르치는 일, 자리를 남에게 양보하는 일, 잠자리를 정결하게 보살피는 일,> 이를 무 재 칠 시(無 財 七 施)라 하였다. 누구든지 마음 하나만으로 일곱 가지나 보시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오! 부라 보, 참 좋은 세상!! 바로 당신을 위한 세상이다.
공 옥 자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