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의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실은 사촌의 밭을 사면 축하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착잡하다. 남이 안 되면 고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특히 라이벌 관계에 있는 자가 일이 잘못되면 더욱 속으로는 좋아 한다.
겉으로는 안됐다고들 하지만 속마음은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게 보통사람들의 마음이다. 반대로 남이 잘되는 걸 보면 배가 아픈 것 역시 보통사람들의 마음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 경험 하는 일이다. 평소에 경쟁상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마음은 들게 마련이다.
형제간도 그렇고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마음이 저마다 감춰져 있기에 서로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허망함을 지나 배신감까지 갖게 될 때도 있다.
이건 마음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왜 생기는 것일까? 경쟁의식에 사로잡힌 욕심이 마음의 내면에 쌓이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림자는 무엇일까?
그림자는 존재의 이면이다.
버릴 수도 없다.
그림자를 버리려하면 존재가 분열된다.
그러니 그림자는 외면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드려야 할 것이고 인정해야한다.
그림자를 받아드리고 인정하는 것을 우리는 진실(眞理, eternal truth)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만큼, 에너지가 되고 향상(向上)의 동기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질투라는 그림자가 있다. 질투란 나쁜 감정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질투가 생긴다고 창피할 것도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질투가 난다고 상대에게 털어놓는 것도 대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남의 아픔에 진정 같이 아파하고 남의 기쁨을 내 것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와는 반대로 질투심 처리를 시기하고 빈정대며 상대의 공을 과소평가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했다느니 증상모략 한다. 축하는커녕 냉소적이다.
이게 세상인심 이다.
더구나 내가 불행에 빠졌을 때 과연 몇 사람이 진정 걱정하고 고통을 함께 해 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진다.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떤가? 나도 상대방을 위해 마음의 그림자를 접고 상대와 같이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부드럽고 훈훈한 정이 감도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인간적 매력의 시초(始初)이고 밝은 사회의 원동력 이다.
이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푸근하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방안엔 훈기가 가득하다.
자신의 가슴에 얼어붙은 인정의 샘이 그 정감으로 녹아내린다.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세상 근심 다 잊고 그지없이 넉넉하고 훈훈하다.
그러나 세상엔 별사람 많다. 만나기만 하면 거만을 떠는 사람, 항상 비판적인 사람, 장점보다 약점을 꼬집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 남의 아픔엔 아예 등을 돌리는 사람..........
이런 세상인심 속에 남의 심경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그리고 슬픔도 기쁨도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마음의 그림자를 품어 안는 사람이다.
우리 주위엔 별의별 사연으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큰 위안이고 희망의 등불을 비쳐주는 것이다.
요즘 신문의 일면을 집어 들면 어둡고, 시끄럽고, 불쾌하고, 무례하고, 부끄러운 사건들이 지면을 장식한다.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세사의 냉혹한 인심 때문에, 슬픔과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이다.
이 괴로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고, 밝고, 맑은 사회 틀을 만들어야한다.
그것은 그림자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이고, 그림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슬픔도 설움도 그리고 세상의 근심까지 용광로처럼 녹여주는 사람, 그림자를 인정하며 모든 걸 감싸 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 그리운 시대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