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사막을 적신 한국의 눈먼 아버지 팡파르(Fanfare)
[세평시평] 사막을 적신 한국의 눈먼 아버지 팡파르(Fanfare)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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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7일간 사막을 달리면서 매일 발목이 잘려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앞 못 보는 나를 위해 아들이 내 앞에서 뛰고 있는데 무너질 수는 없었습니다.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이 말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꼽히는 칠레아타카마 사막에서 열린 사막마라톤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  송경태씨가 아들의 손을 잡고 250Km 코스를 완주하고 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목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경의(敬意)의 눈물을 참았다.

무엇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한 상황 속으로 이 눈먼 장애인의 자신을 내던지게 했을까? 며칠간의 마라톤, 장애인의 입장에선, 그건 시합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나도 며칠 전 이 사막 마라톤대회 중개방송을 시청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시청을 못해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참가한 것을 몰랐다.

사막마라톤 경기가 끝난 후 한국의 장님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칠레 “죽음의 사막”을 건넜다는 뉴스를 듣고 알았다.

나는 이 TV 중개를 보면서 해발 4000m의 산소가 부족하고 험준한 사막에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은 어쩌다 죽음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참가한 각자는 삶의 갈증을 풀고, 삶의 본질을 각인하기위해 처절한 생의 몸부림이었다.

물기 한 점 없는 사막에서 자신의 절제와 의지만으로 달려야하는, 혹독한 대회에 참가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젊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돈과 권력에 유린되는 인권을 위해서...... 등등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맹인 아버지는 이 세상관계에서 강인한 아버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맹인 아버지는 이것이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의 의지는 이 체험을 하지 않으면, 강인한 아버지가 안 될 것 같은 갈증이 그를 사막으로 밀어내었을 것이다.

이 아버지의 의지는 그 자체로 값진 것이다. 인간 승리의 팡파르다.

이 아버지는 장애인으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으로 했을 것이다.

장애인으로서 처절한 좌절감은 비우고 또 비웠을 것이다, 그리고 강인한 아버지상은 채우고 또 채웠을 것이다.

어느 장애인이나, 삶이라는 자리는 불안 하게 느껴질 수뿐이 없다.

그래서 채워지지 않은 허탈감을 가눌 수 없어서 사막 마라톤에 참가 했을 수도 있다. 

이분은 착하게 살아온 과거, 소박한 삶, 아직까지는 인생의 역경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진솔하고, 강인한 희망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각기 온갖 형태의 삶을 끌어안고 그저 담담히 감내하며 견디어야하는  현대인의 동질감으로, 동지애와 안도감에 급기야 내 마음은 파르르 전율을 느낀다.

이 분의 삶 속에는 여전히 사막이 있고, 신기루를 가지고 오아시스(oasis)를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속엔 언제나 자유롭고 풍요로움이 숨쉴 것이고, 그의 주위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넘칠 것이다.

사는 일이 힘들고 외로울 때 언제고 꺼내 볼 수 있는 자신만이 신기루와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희망이고 인생의 등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청량한 삶의 향기를 접한 이 기회에, 나의 삶 속에도 이런 감성이 촉촉한 수분으로 오래 머물었으면 좋겠다. 

이런 촉촉한 수분으로 인생의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연한 녹색은 어느덧 ‘원숙한 여인’의 몸매처럼 진한 녹음으로,  나의 삶의 그늘(自慢)이 되어 나의 마음에 나태가 찾아오겠지? 

나의 마지막 마음의 종착역(終着驛)이 나태한 마음이라면, 나의 마음의 마지막 한 톨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 버릴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밝고 맑고 순결하고 신선한 4월에 맞지 않은 생각인줄 알면서 도말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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