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다는 순간부터 표변
머리 조아리며 “머슴이 되겠다”고 했다.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애걸복걸(哀乞伏乞) 표를 구걸(求乞) 했다. 그래서 299명(비례대표 54명포함)의 18대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말대로라면 오는 5월30일부터 그들은 4년간의 머슴살이에 들어가야 옳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을 머슴이라 여기지 않는다. 더 이상 심부름꾼일 수도 없다.
그런 말 하는 것 자체가 거북살스럽다.
금배지를 다는 순간부터 그들은 굴신(屈身)하던 허리를 곧추 세우고 거드름 피울 것이다.
깁스 한 것처럼 목은 이미 뻣뻣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될 터이다.
국회의사당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국민의 머슴이나 심부름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상전(上典) 행세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국민이 지금까지 경험했고 피부로 느껴왔던 국회의원 상(像)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천역(賤役)도 마다않겠다던 그들의 표변(豹變)은 이렇듯 염치없이 빠르고 놀랍다.
연봉 1억 받는 머슴도 있나
하기야 머슴이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면 이미 머슴일 수가 없다.
상전의 반열에 들것이다. 그래서 애당초 “머슴이 되겠다”는 말자체가 거짓일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한 사람을 위해 매달 소요되는 법정 금액은 6명의 보좌관 월급과 각종 지원경비 포함 대략 2681만원이다.
이렇게 해서 의원 1인당 4년 동안 약 18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
여기에다 국유철도ㆍ선박ㆍ항공기 무료 이용 등 유형무형의 각종 특혜가 주어진다.
회기 중 불 체포 특권과 면책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에서 야인이 되었을 때는 국민연금 40년가입자에 상응하는 매달 100만원씩의 주어진다.
여기에다 법률적ㆍ관행적 예우와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상전도 이런 상전은 드물 것이다.
이러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며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안달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3조6000억원대의 정몽준의원의 재산을 제외한 18대 국회의원 한 사람당 평균 재산이 26억원을 넘었다면 온갖 시늉을 하며 “머슴노릇 하겠다”한들 누가 그 진정성에 동의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권 전체에 보내는 경고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번 ‘4.9 총선 당선자’들은 표로써 정치권에 보낸 국민의 엄정한 메시지를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국민의 선택은 절묘했다. 어느 한 쪽에 완승도, 완패도 안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따끔하고 무서운 심판을 내린 것이다.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에는 각료 인선과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실책과 독선과 오만을 예리하게 꾸짖었다.
그러면서 절박한 상황인식 없이 쉽게 가자는 ‘이지고잉(easy going)’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대화와 타협과 조정의 묘를 발휘해 국영운영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진보세력에게는 이념의 사슬에 묶여 소리만 내질렀던 지난날의 ‘얼치기 이념정치’에서 탈피하라는 혹독한 명령이었다.
특히 46%라는 사상 최저 투표율은 국민적 정치 혐오증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대 국회는 당파 또는 계파 싸움에서 벗어나 국민의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는 민생국회가 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18대 국회가 ‘상전국회’가 아닌 ‘머슴국회’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