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는 후배 하나가 두명의 자녀를 미국에 보낸다고 한다.
초등학교3학년, 중학교 1년이니 조기 언어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까운 지인이 미국에 있고 엄마도 따라간다고 하니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며는 개인성장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면으로는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며는 선택받은 기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후배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자녀들이 새로운 문화에 잘 적응하여 좋은 경험을 갖고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과연 영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을 안 던질 수가 없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는 대략 4억만명이고 공용어로 쓰는 나라는 60여개국이라 하니 영어의 위력은 사실 대단한 것 같다.
그위에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인터넷정보의 80%가 영어로 기록되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영어를 알아야 글로벌시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에 사는 것 같다.
영어의 필요성은 필자도 인정한다.
그런데 그 영어배움에 접근하는 우리의 방법은 한번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앞에 말한 나의 후배의 자식들이 한국에서 소기의 영어학습효과가 기대되어 졌다면 구태어 이시점에 미국까지 가려고 하였을까.
우리가 영어에 쏟은 노력이나 시간은 상당했다고 보여진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를 그것도 일주일에 매일이다시피 공부를 했는데도 말못하는 영어를 양산했으니 그 투자에 비하여 효과는 극히 저조한 가장 비경제적인 행위였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러한 비경제적 영어학습경험은 우리 한국에서의 자체적인 공부방법으로는 도저히 영어는 할 수 없는 언어로구나 판단한 나머지 조기유학을 가며는, 원어민강사들에 직접 교육받으면 뭔가가 틀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말못하는 영어를 양산한 것은 슬픈일이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말이다.우리는 여기에서 어린애들이 우리말의 습득과정을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어랜애들에게 우리가 영어를 처음 배우듯이 문장을 해부하고 문법적으로 접근했다며는 과연 어린애들은 언어 습득이 가능했을까.
그렇다면 말못하는 영어를 양산한 것은 영어수요자측에서의 문제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영어공급자측에서의 문제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양쪽 다일까. 복잡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영어를 잘하는 국가가 경쟁력이 있음은 사실인것 같다.
이제는 우리는 필요한 사람은 영어를 할 수 밖에 없게됐다.
과거의 쓰라린 영어실패경험을 갖던 아니면 앞으로 새롭게 영어를 배우든간에 세계속에 한국,세계속에 제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국제자유도시는 사람과 물건의 자유로운 이동을 담보한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그들이 관광객이건 비지니스관련이건)이 한국어를 잘하여 우리하고 의사소통이 잘 되리라는 기대는 아직 이르다.
세계속의 제주는 구호로만 되는 것은 아닐진대 영어가필요한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영어를 해야하는 운명이라면 너무 가혹한 처사일까.
우리는 2002년 월드컵 한국축구감독 히딩크를 알 것이다.
그의 장점은 축구전략도 좋았지만 그의 외국어실력(네덜란드인으로 영어를 비롯해 몇 개국어를 하며 스페인축구감독시절에는 스페인말도 공부하였다 한다) 또한 뛰어나 감독으로서의 의사소통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음을 알 것이다.
의사소통도구로서의 언어는 우선 입이 열려야 할 것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들을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고 읽는방법을 중점적으로 해온 영어공부는 한계에 도달했음이 이제는 누구가 아는 일이나, 새로운 방법을 찾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영어학습방법이 마치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기 때문에 좀 틀린다고 발음이 좀 나쁘다고 순서가 뒤 바뀐다고해서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며는 외국어의 습득은 참 어려울 것 같다.
서투른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서투름의 연속이 결국 말할 수 있는 영어로 변화시켜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자유도시를 짊어지고 그 발전에 힘을 쏟는 계층의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이 바람직함은 나만의 욕심일까….
김 영 호
제주관광대학 컨벤션산업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