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면서 문화 대국이다.
세계 경찰국가 노릇도 한다. 미시건대 비교정치학 교수인 안드레이 S 마코비츠는 「미국이 미운 이유」에서, 최강자 미국을 미워하는 것은 인간 본성 때문이라 했다. 최강자는 거만하고 위선자이고, 무자비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미주의는 미국의 힘에 대한 반발과 두려움의 표출이라고도 주장했다.
찜짱은 반미항전 시대 베트남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는 아침 마당에 나갔다가 폭탄 투하 자국으로 만들어진 웅덩이를 발견했다.
물이 고여 있었고, 야생화들이 피어있는 것으로 보아 새로 생긴 포탄자국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그 물 위에 수련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에서 감흥이 일어나 「수련꽃」이란 시를 썼다. ‘이른 아침 뜰에 나가 수련꽃을 땄네/ 폭탄구덩이 아래 어머니가 심은 수련꽃/ 아아, 어디가 아프길래 물밑 바닥부터/ 잔물결 끝도 없이 일렁이는가/ 몇 해 지나 폭탄구덩이 여전히 거기에 있어/ 야자수 아래서 이파리 푸른 물결을 덮고/ 아아, 우리 누이의 살점이던가/ 수련꽃 오늘 더욱 붉네’라고 베트남 민중의 심정을 처절하게 노래하였으며, 그래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5, 60년대를 거치면서 반미의식을 담아낸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그 중 김수영, 신동엽은 그 일에 앞장 선 대표적 시인들이다.
당시 그 것을 다루는 것이 반공법위반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러한 작품은 활발히 쓸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미국인을 향하여 김수영은「가다오 나가다오」를 외쳤다.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울부짖었다.
신동엽 역시 「왜 쏘아」를 통하여 미국을 공박했다.
‘왜 쏘아,/ 우리가 설혹/ 쓰레기통이 아니라/ 그대들의 판자 안방을 침범했었다 해도/ 우리가 맨 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 쏘지 마라/ 솔직히 얘기지만/ 그런 총 쏘라고/ 박첨지네 기름진 논밭/ 그리고 이 강산의 맑은 우물/ 그대들에게 빌려준 우리 아니야// 벌주기도 싫다/ 머피 일등병이며 누구며 너희 고향으로/ 그냥 돌아가 주는 것이 좋겠어.// 솔직히 얘기지만/ 이곳은 우리들의/ 백 년 이백 년 천 년을 살아온/ 아름다운 땅이다// 솔직히 얘기지만/ 이곳은 우리들이 천년 이천년/ 울타리 없이 콧노래 부르며 잘 살아온/ 아름다운 강산이다’라고 민족혼까지 일깨웠다.
또 있다. 이선관 시인이다. 그는 최근「이 땅의 점령군」이란 시를 통해, 미군은 우리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주둔군이 아니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세파트’라고 했다.
‘이천이년 십일월 삼십일 오후 여섯시/ 미군 장갑차에 무참히도 깔려 숨져간/ 신효순 심미선 양을 위한/ 광화문에서의 추모 촛불시위/ 그 순간부터/ 미8군은 주둔군이라 생각하지 말자// 이 땅에 밀가루를 퍼 줄 때부터 그들은 주둔군이 아니었다/ 이 땅에 발을 내디딜 때부터 그들은 이미 점령군이었다 //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세파트/ 그 미쳐 날뛰는 세파트에게는/ 금방 삶은 뜨거운 조선 무가 딱 알맞는 약이란다’라고 화살을 날렸다.
반미를 외친 시인은 많다.
아아, 제주출신 김명식 시인도 4ㆍ3을 노래하면서 처절하게 미국을 공박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