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 할머니의 타계 소식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할머니의 죽음에서 응축된 ‘4?의 한’을 되새기고 반세기 넘게 제주를 굴종시켰던 아픈 ‘4ㆍ3의 역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9일 오전 향년 90세로 타계한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 ‘진아영 할머니’의 반세기 삶은 바로 4ㆍ3의 아픔이었고, 4ㆍ3의 한이었고, 4ㆍ3의 강요된 침묵이었고, 아직도 진행중인 4ㆍ3의 역사나 다름없다.
진 할머니는 35살되던 1949년 1월, 집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이 날아갔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날아간 턱은 죽을 때까지 무명천으로 날아간 턱을 감추며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55년동안 무명천으로 턱을 감싸안고 살았듯 4ㆍ3의 한과 아픔을 침묵으로 싸매 살았다.
4ㆍ3 특별법이 제정되고 4ㆍ3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까지 있었지만 진 할머니의 4ㆍ3은 총탄으로 턱을 잃어버렸던 55년 세월을 뛰어넘지 못한 저승길이었다.
무엇이 순박한 시골아낙네를 이처럼 잔인하고 한 많은 눈물겨운 삶으로 몰아넣었던가.
사상도 이데올로기도 무엇인지 조차 모른 무지렁이 시골 여인이 왜 무명천으로 턱을 싸매듯 한을 싸안고 아무말도 못하며 55년을 살다가 죽어야 했을까.
진할머니의 죽음은 바로 이같은 의문을 산자들이 풀어야 된다는 ‘침묵의 아우성’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4ㆍ3은 과거가 아니고 오늘도 계속되는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진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4ㆍ3은 그렇게 한 올씩이라도 진실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