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까지 버리는 '지도층 책무'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칼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스스로 교수형(絞首刑)을 받겠다고 나섰던 사람은 6명이었다.
칼레시의 시장, 칼레시의 최고부자, 권위 있는 법률가 등등.
그들은 칼레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았던 귀족들.
칼레시민의 생명을 구하기위해서는 도시의 대표적 시민들이 처형을 받아야 한다는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조건에 앞장서 응했던 사람들이었다.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간 벌어졌던 백년전쟁 때(1337-1453)일이었다.
로뎅의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유명한 조각작품이다.
그렇다면 왜 660년도 더 지난 14세기의 역사적 사실을 21세기 한국에서 새삼 떠올려야 하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지도자’의 자기희생과 윤리의식인 도덕적 책무가 부끄러워서다.
궤변으로 치부 감추기 급급
‘6인의 칼레의 시민’은 당대에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며 절정의 삶을 살았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도륙(屠戮) 당할 처지의 칼레시민들을 위해 이모든 ‘절정의 삶’을 포기했다.
자기 목숨까지 스스럼없이 내놓았던 것이다.
이들은 자기 희생을 통해 더 큰 도덕적 가치를 실현했다.
이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으로 역사적 찬사를 이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부끄럽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뭔가 가졌다는 이른바 ‘지도층’은 어떤 사람들인가.
가진것을 나누어 주거나 자기를 버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온갖 불법과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여 더 긁어 모으려고 안달을 부리고 있다.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변명과 궤변으로 자기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기본적인 자질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도덕성도 없다.
사회적 윤리의식이나 신뢰의 끈도 볼 수가 없다.
새정부 일부 장관들의 면면이나 행태가 그렇다.
스스로 물러나야 현명한 일
이명박 정부의 장관임명 파동은 바로 이 같은 도덕 불감증에서 비롯됐다.
더 많이 갖겠다는 욕심이 그 씨앗이다.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너나 없이 법 시비에 연루돼 있다. 그래서 뒷말이 많다.
오죽해야 온 국민이 기대를 걸었던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취임 보름도 안돼 “더 나빠졌다”(45%)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겠는가.
장관 인선후의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다.
정진석 추기경도 “염려가 된다”고 했다. 이대통령 경선 과정서부터 적극 도왔다는 YS(김영삼 전대통령)까지 걱정했다.
그래서 감히 주문하고자 한다.
각종 의혹에 연루가 된 문제의 장관후보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새정부의 초반 순항을 위해서도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최소한 도리다.
이와 함께 도덕적 흠결에 관계없이 이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부터 받은 공천을 반납하고 뒤에서 대통령을 돕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그래야 대통령의 행보가 가벼워 질것이다.
이부의장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더 큰 가치를 창출하기 바란다.
한국의 지도충에 요구되는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바로 이같은 살신성인(殺身成人)에 있다.
이것이 이대통령 가(家)에 보내는 첫 번째 쓴 소리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