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요즘 인사말은 한 가지다.
"벌초는 어떵 허연?"이다.
다른 지방에도 벌초(伐草)가 있지만 특히 본도에서는 소분에 대한 의미가 각별하다.
중.장년층들은 여름 햇살이 엷어질 때쯤이면 벌초걱정이다.
사실 지나고 나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혹시 소홀할까봐 미리 하는 초사(焦思)일 따름이다.
가문가례(家門家禮)라고 집집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서 하는 집안 벌초와 문중 벌초가 있다.
6~8촌이 모여서 고조부이내 조상들에 대한 벌초를 끝내면 더 넓은 개념의 친척들이 모이는 문중벌초가 대개 음력 8월 1일을 전후해서 기다린다.
묘제를 지내고 점심을 먹을라 치면 문중회장이나 어르신들의 일장훈시와 함께 결석자들에 대한 군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결석에는 숱한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서울 등 다른 지방에 살아도 예외란 없다.
일본 사는 친척들은 미안함을 지우고자 지금은 일반화된 예초기를 보낸 사례도 많다.
20여년 전 만해도 벌초 다니면서 예초기를 메고 있으면 '잘사는 교포 친척 있구나'라는 짐작을 하기도 했다.
농사를 지으며 선산 인근에 살면서 벌초에 빠지는 법이 없는 친척들은 '누구는 안 바쁘냐' '구부러진 소나무만 선산을 지키라는 법 있느냐'는 볼멘 소리를 낸다.
이때쯤 결석자들에게 벌금을 물리자는 소리가 터져 나오면 호응이 크다.
이런 저런 흥겨운 소란 속에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뿌듯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광경을 볼 날도 별로 남지 않았다.
집집마다 딸이든 아들이든 한 명이나 둘 정도를 낳고 끝내는 통에 벌초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 예로 벌초대행회사의 발전이 눈부시다는 소식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선산은 늘어날 것이고 자손은 줄어드니 노동력의 누수로 인한 '골총(혹은 폐총)대량 발생 사태'가 도래할 날도 금방이다.
결국 '놉을 빌어야 한다.'
아니면 화장 등을 통한 납골당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협소한 국토에 무작정 묘지만 늘려서는 대책이 없다라는 현실론이나 조상에 대한 예의 등을 운운하는 반론을 두고 누가 옳다고 따질 생각은 없지만 아버지 손잡고 흙 냄새가 텁텁한 산길을 걸던 추억이 새롭다.
우리가 잃어버려야할 것 중 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