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3ㆍ1절을 보냈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장관 인선 문제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맞는 3ㆍ1절이어서 더 그랬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E.H.카아의 말은 정론이 된지 오래다. 그는 기록만 하고 평가하지 않으면 역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과거에 비춰 현재를 보고, 현재에 비춰 과거를 보면서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땅히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역사와 내일의 역사가 부끄러워지지 않는다.
기억 조차 하기 싫은 역사는 그런 역사대로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고, 올바른 역사는 그 정신을 되살려 보다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 발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역사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한 두 가지로 압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여러 가지 중에서 정치는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일제에 36년이란 기나 긴 세월을 강점당한 것도 정치의 역사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라를 송두리째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최악의 수치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산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죄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ㆍ1정신이 빛나는 것은 소수의 정치인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국민이라는 민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운동은 명예를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만주에 독립군 사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시형ㆍ이회형 형제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석주 이상룡이 그랬다.
지위를 위한 것도, 명예를 위한 것도, 그렇다고 고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흔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더 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새 정부가 내세운 장관 내정자들의 면면을 보면 3ㆍ1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는 선비정신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몇몇 장관 내정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도덕성이 문제가 돼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임명된 사람들 중에도 재산형성 과정과 논문 표절, 병역면제 등 고위층이 지녀야 할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도덕성을 지닌 지도층과 이들을 믿고 따르는 국민이 공존할 때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국토를 오늘의 중국 일부 지역까지 광대하게 넓힌 고구려의 역사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의 역사, 그리고 500년을 유지해 온 조선의 역사 모두 나름대로 고위층과 가진자들의 미덕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귀족들의 재산 헌납과 화랑정신, 배를 주리면서도 청렴성을 지키려는 선비정신 모두 역사 발전의 디딤돌이 됐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우리의 역사에 비하면 일천하다.
이미 그런대로 국가의 안위와 이웃의 굶주림을 먼저 생각하고 나를 희생하는 귀족과 선비와 재력가들이 적잖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위층에 요구되는 의무와 가진자의 미덕을 지키고 베풀었다.
세종때 정승을 지낸 황희와 맹사성이, 경주 만석군 최 진사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일부 정치인과 삼성그룹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자가 아프카니스탄 최전선에서 대 탈레반 전투작전을 수행 중인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 사실이 공개된 뒤 그의 안전을 우려한 영국 국방부가 즉각 철수를 결정했다지만, 이 게 바로 고위층의 의무인 것이다.
앤드루 왕자 역시 1982년 포클랜드 전쟁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한 바 있어 새삼스런 일은 아니나, 영국을 이끄는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국민들이 등을 돌리지 않도록 영국 왕실의 의도된 작품이라고 평가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떻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어려운 선택이고, 귀감이 돼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최고 부자 빌 게이츠 등 부자들의 거액의 사회 환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그(빌 게이츠)가 50대 한창 일할 나이에 보다 유능한 후진들을 위해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해 또다시 화제가 됐다.
장관 등 국가 지도자가 되는 사람과 되려는 사람들의 도덕적 의무와 재벌 등 가진자들의 사회환원이 더 없이 긴요한 시점이다.
재벌가족이 자리를 꿰차 앉고, 문제가 생겨야 사회에 기부금을 내는 현실도 부끄러운 일이다.
늦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야 말로 역사 발전의 관건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