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캄보디아와 태국의 무더위 속에 일 주일 동안 진땀을 빼며 헐떡이다 도착한 싱가포르에는, 마침 비가 내려 그 동안의 여독을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열대 특유의 무성한 나무들이 도열하듯 늘어선 도로 양측으로 비에 씻겨 더욱 웅장하고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군들이 지나 온 캄보디아와 태국의 남루함과 대비되며 깨끗한 정부, 깨끗한 도시,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싱가포르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국제자유도시의 풍경들을 선망의 시선으로 응시하며 ‘위대한 인간의 힘’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가늠하기 어려운 대규모와 예술성으로 세계문명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트 문명. 아유타 유적에서 발원하여 방콕 시내 도처에 산재한 태국의 웅장한 문화유산들이 이제는 역사의 풍화에 사라져간 옛사람들의 힘으로 이룩했던 빼어난 명작이라면, 제주도의 삼 분의 일도 안되는 조막손만한 섬에 그림같은 도시를 그려낸 싱가포르 사람들의 힘은 아직도 펄펄 살아있어 도시의 진화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 발전의 중심에 ‘초대 총리’ 이 콴유의 리더십이 싱가포르강으로 힘차게 물을 토하는 ‘머라이언상’처럼 눈부릅뜨고 있었습니다.
비록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의 최적지라는 지정학적인 이점을 갖고 있지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을 얻어내고, 다민족 국민들을 함께 껴안고 나가는 리더십으로 싱가포르를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이 콴유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부러웠습니다.
반면 인민들의 의식주 하나 챙겨주지 못하는 무능으로도 모자라 아버지 김 일성처럼 세습을 꿈꾸는 김 정일이나, 그들만의 리그로 10년 세월을 허송해버린 국민?참여정부 지도자들이, 이 콴유의 리더십과 아름다운 성취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할지 사뭇 궁금해졌습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깨끗한 도시의 얼굴이었습니다.
담배꽁초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도로 위로, 국민소득을 증거하는 고급 자동차들이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리한 고만고만한 숲들에는 싱그러운 신록의 향기가 가득했고, 싱가포르강의 유람선을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은 강가의 빌딩 숲으로 소리없이 불어갔습니다.
하여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들과 원색의 자연 풍경이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문득 마구잡이 개발로 상처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금수강산과 회색의 도시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리고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국토의 개발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싱가포르 사람들과의 만남도 즐거운 추억이었습니다.
중국계와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계등 여러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 제 각각의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지만, 이방인들과의 대화는 영어로 하고 있었습니다.
담배가게 할머니나 선술집 주인들, 시내관광용 자전거를 모는 더벅머리 총각들까지 모두 일정수준의 영어구사능력을 갖추고 있어, 별로 불편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선술집에서 만난 술 취한 중년 남자와의 대화에서는 오히려 명색이 학교 선생인 내가 혀 짧은 영어 회화 실력 때문에 진땀을 뺐습니다.
그랬지만 어렵사리 취중 대화의 물꼬를 이어갈 수 있었고, 결국 술김에 그가 한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한 턱을 쓴다며 내온 맥주로 건배를 하며, 인류공동체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물품에 관세가 없지만 술과 담배, 자동차에는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맥주 한 병에 8000원이나 하는 데, 그 사람 이튿날 빈 지갑을 열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술 좋아하는 나로서 동병상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글로벌을 강조하는 지구촌 시대에, 언어는 세계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핵심 수단입니다.
실험으로 끝난 에스페란토어와 같이 세계 공통의 언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현실은 영어가 점차 세계인의 언어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영어 구사능력을 제고하는 일이야말로 세계화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꺾였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영어의 비중이 적지 않고, 영어과외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대개 대학입시와 취업시험을 위한 ‘죽은 영어’에 그쳐 정작 세계인들과의 대화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민들의 영어구사능력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어찌 마음이 통하며 관광상품을 어떻게 팔 수 있겠습니까.
요즘 이 명박 정부의 인수위가 제시한 영어교육 패러다임의 획기적 로드맵에 시시비비가 많지만,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책방향에는 누구도 딴지를 걸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발독재라는 지적이 없지 않지만, 정부 주도의 국가발전 계획과 국민들의 동참으로 명실상부한 국제자유도시로 비상하는 싱가포르를 완상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우리 국민들이 그들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을 뛰어넘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영광을 포효할 수 있도록, 이 명박 정부의 지도자들이 5년 동안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아주기를 기도했습니다.
고 권 일
삼성여고 교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