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러가 말한 ‘정치의 무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물결 ‘정치의 무덤’ 편에서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있다.
“핵무기로 가득 차 있고,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붕괴 직전의 상태에 있는 세계에서 ‘제2물결’의 정치체제가 급속히 시대에 뒤떨어져 사회 전체에 극심한 위협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로 인해 야당 뿐아니라 여당에도,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 마디로, 제2물결의 정치구조로는 제3물결의 문명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제2물결의 정치구조는 어떤 것이고, 왜 제3물결의 정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흔히, 세상은 바뀌었는데 안 바뀐 게 딱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정치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농경사회(제1물결)에서 산업사회(제2물결)로, 다시 전자정보산업사회인 제3물결의 시대에 진입한지 이미 오래다.
산업사회까지는 강력한 리더와 다수에 의한 권력(지배)을 필요로 했다. 독재자의 출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치.사회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를 따르라’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제3물결의 시대는 ‘나를 따르라’는 시대도 아니고,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고 억누르면서 통제하는 시대도 아니다. 아무리 힘센 다수라도 소수를 포용하면서 함께 가야 하는 시대다.
지금은 정보와 지식이 정치인과 특정 엘리트층에 독점되고 있는 때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고, 특히 개개인의 인권과 권리가 중시되고 있다. 정치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특정 정당과 특정 그룹, 특정 정치지도자가 아니면 국민의 삶과 나라의 운명이 크게 잘못 돼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고전적이다.
오히려 국민들은 다수의 힘과 횡포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가 아니라 소수와 타협하고, 협력하고, 화합해서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정치를 바라고 있다. 정치적으로 원만한 협약이 이뤄지면 ‘너 죽고, 나 살기’식 당내 투쟁이나, 여야 간 대립과 갈등 없이 안정된 문명사회로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토플러는 이미 권력의 진공 상태가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변화의 물결을 따르지 않고 갈팡질팡 흔들리는 사이에 (사회 전반에) 블랙 홀이 출현하고 있다고 현실정치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한나라당 과거로 회귀하나
한나라당이 이전 열린우리당을 닮아가고 있다. 총선 공천을 놓고 벌이는 집안 싸움이 민망스럽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열린우리당도 처음부터 국민이 등을 돌려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다수 당이라는 오만과 허세와 청와대의 눈치만 보다가 결국 무너졌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탓도 크다.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인기만 있었어도 열린당이 몰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내편을 많이 당선시킨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세(勢)의 정치보다 질의 정치가 더 중요하다. 특정인들을 당선시키려고 당헌과 당규를 무시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당내 문제를 떠나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한나라당 내분이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공천 신청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 갈등이 풀리는 듯해 보이지만, 이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부정.부패 전력자의 공천을 불허하기로 했다면 원칙대로 가는 게 순리다.
새로 구성될 국회에서 몇 석의 의석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깨끗하고 헌신적인 인물들로 채워져야 한다.
만약, 오는 4월 총선 후 다시 정치판이 혼란스럽고, 패닉현상에 빠진다면, 그 일차적 책임은 여당인 한나라당에 있다. 특히 당의 두 중심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부터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은 인물들을 총선에 내보려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내편 사람을 많이 당선시키겠다는 것은 무모한 과욕일 뿐이다. 아마도 그게 대부분 국민의 정서일 것이다.
내말대로 안 하면 탈당도 불사하겠다든가, 우리끼리만 헤쳐 모여 분당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도 더 이상 불필요하다. 부득이 탈당이나 분당을 하더라도 조용히 갈라서면 그만이다.
역시 필요한 것은 깨끗한 인적 구성을 통해 다른 당과 협조하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당내 문제를 드러내 놓고 협박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국민을 위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패와 부패한 인물과 당내 세력 투쟁의 격화로 인해 정치가 진공상태에 내몰리고, 블랙홀의 출현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