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소도리 쟁이'
[세평시평] '소도리 쟁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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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리’라는 말이 있다. 제주말(語)이다. 남의 한 말을 이리저리 옮긴다는 뜻이다.

그런 일에 이력(履歷)이 붙은 사람을 제주에서는 ‘소도리 쟁이‘라 부른다. ‘소문을 옮기는 데 프로급인 사람’이다.

그러기에 ‘소도리 쟁이’의 입은 항상 분란(紛亂)을 일으키는 팔랑개비나 다름없다.

바람을 타고 돌아갈수록 소문은 살이 찌고 새끼를 치게 마련이다. 주먹안의 조그만 눈덩이가 굴릴수록 집채만 한 덩치로 불어나는 것과 같다.

“누가 누구와 이야기 하더라”는 사실이 ‘소도리 쟁이’ 입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나면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황당하고 무서운 살인사건으로 둔갑한다. 그래서 ‘소도리’가 무섭다.

여기서 말하는 ‘소도리’는 사회나 시대를 황폐하게 만드는 악의적 소문이나 유언비어로 이해하면 될 터이다.

이런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여 유통 시키는 ‘소도리 쟁이’들이 지금 온라인 세상을 누비며 ‘외설스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오프라인 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그들이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자나 다름없다.

한 번 물었다 하면 지저분한 부위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가히 ‘하이에나’ 식성이다.

‘한 가수가 바지를 내리자, 한국이 숨을 죽였다’.

지난 25일 로이터 통신이 서울에서 전 세계를 향해 쏘아 올린 기사의 제목이다.

괴담에 시달리던 가수 나훈아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한 것이다.

이른바 ‘나훈아 괴담’은 따지고 보면 관음증(觀淫症)을 즐기는 ‘황색 연예 저너리즘’과 ‘인터넷 소도리 쟁이’들이 지어내 유통시킨 황당 소설이나 다름없다.

2006년 10월 스포츠 신문과 인터넷에 떠돌았던 ‘나훈아 관련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괴담으로 새끼를 친 것이다.

“나훈아가 다른 연예인의 부인을 뺐었다”는 소문에서 출발하여 ‘간통설’ ‘후배 여배우와의 염문설’ ‘야쿠자에 의해 신체부위 훼손설’ ‘중병설’ 등 지난 1년여 알을 까고 새끼에 새끼를 치며 번졌던 인터넷 루머는 너무 무책임했고 너무 잔인했다.

나훈아는 회견에서 “당신들이 펜으로 나를 죽였다”고 기자들을 향해 격노했지만 그것으로 지난 1년동안 인격살인을 당한 억울함을 풀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죽해야 회견도중 책상에 올라서서 혁대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리며 “보여줘야 믿겠느냐”고 충격적 상황을 연출했겠는가.

대개 인터넷 루머의 생산이나 유통은 악의에서 출발한다. 익명성에 기대어 남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악랄함이 숨어있다.

일본의 주간지 ‘週刊文春’기자 출신인 ‘롯카쿠히로시(六角弘)는 괴문서나 유언비어 연구 전문가다.

그는 괴문서나 유언비어 특징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고, 악의적이고, 불특정 다수가 소비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특징의 괴문서나 유언비어는 거의가 작위적인 거짓에 기초하고 있다고 했다.

“나훈아는 대중적 욕망의 희생자”라거나 “집단 관음증의 피해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제어하기 힘든 인터넷 악플의 심각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치명적 개인의 명예 훼손과 인격살인 수준의 공격성 인터넷 악플을 정보사회의 부작용으로만 보아 넘기기에는 그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그러기에 ‘나훈아 괴담 파문’은 인터넷 댓글 규제 강화를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소도리 쟁이’들이 사회의 건강성을 갉아 먹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김   덕   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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