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행복한 음주운전?
[나의 생각] 행복한 음주운전?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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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기다리며 한해의 업무를 정리할 무렵, 제주도로의 발령소식을 접했다.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사실이 현실로 와닿지 않았지만, 가족들에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긴장된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 나의 시선에 들어 온 정부 제주 종합청사의 깔끔한 이미지는 낯선 두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제주도 방언은 육지 사람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 온 정신을 집중하게 만들었지만, 긴장된 눈으로 고개를 들면 떡하니 서 있는 한라산의 푸근함에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제주도에 적응하고 있을 즈음, 음주운전 등으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40시간의 수강명령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되었고, 제주도에서 처음 근무하는 초보자로서 나도 프로그램에 동참해도 좋다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행복한 삶’ 이라는 주제는 사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강명령의 주제와는 차별된 듯하여 의아한 마음으로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모두 40시간의 길고 지루한 여행을 준비라도 하는 듯 경직되고 불만에 찬 얼굴로 하나 둘 교육장을 채웠다.

화기애애한 교육장 분위기는 상상할 수 없을 듯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한 열의는 감히 찾아볼 수 없도록 강의 전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장을 메우는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을 드러내는 힘든 작업을 통해 적나라한 자신과 만날 수 있었고 반성하고 결심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한 삶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살아 오면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뛰었지만 진정 소중한 것을 무시하며 행복과는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못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강의가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할 일 목록을 만들고 생활계획을 작성하면서 실천의 중요함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고 말하는 최고령 할아버지의 말은 ‘지금’ ‘이 순간’ 깨달음을 실천하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이리라. 딱딱한 법을 집행하는 보호관찰소의 직원으로서 말랑말랑한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런데…행복이라는 술에 취해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음주운전하는 일은 맘껏 권장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도 수강명령을 집행해야 할까 …!

주   정   희
제주보호관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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