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유족의 울부짖음
[세평시평] 유족의 울부짖음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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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는 원시 경전에 “유복자를 잃은 과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예화와 비유를 통해 인생의 참 진리를 깨우치는 일화이다.

제자들에게 설법을 마치고 명상에 잠겨 있는 석가모니에게 젊은 여인이 찾아왔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여인이 하소연하는 사연은 이러하였다.

“5년 전에 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저는 올해 다섯 살이 된 아들에게만 삶의 보람을 걸고 이때까지 살아왔는데, 아들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 허무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침통한 순간이 흐른 다음, 부처님의 조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부인의 괴로운 심정을 위로하기 위해 불공을 드리겠습니다.

마을의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시주쌀을 조금만 얻어 오십시오. 다만 사람이 죽어 본 적이 없는 집안에서만 쌀을 얻어 와야 합니다.”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그리고는 3일만에 다시 부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은 여인은 빈 손이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음성으로 여인은 입을 열었다. “부처님,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죽어 본 적이 없는 집안은 있을 수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진리를 이심전심으로 일깨워 준 일화지만, 세속적 번뇌에 젖은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우리는 가끔 부모의 초상을 당한 친지를 찾아가서 조문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한다. 그 때 나의 말을 통하여 우리의 친지는 위로를 받았을 것인가? 위로한답시고 건넨 나의 말이 오히려 초상을 당한 이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을까? “사람의 죽음은, 죽은 사람 자신보다 생존자의 문제이다.”(T· 만)라는 말처럼 죽음의 고통은 그 유족들과 친지들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이어져 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 죽음이 마련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죽음의 고통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세상에 죽음도 가지가지일 것이다. “죽음은 때로는 벌이요 때로는 선물이며 수많은 사람에게는 은혜였었다.”(세네카) 천수를 누리고 죽는 사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주는 사람, 종교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었다.

오랜 세월 가신 임을 그리며 절개를 지키다 숨져간 여인, 불의의 사고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도 많았다.

사악한 음모에 걸려 피를 토하고 죽은 사람은 또 얼마였을까? 이 모든 죽음을 주제로 하여 많은 종교, 철학, 예술들이 답을 내려 왔다. 그리고 그 해답에서 우리는 위로를 얻고 자신과 이웃을 돌보며 살아간다.

며칠 전에 어느 냉동물류창고에 화재가 발생하여 4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은 끔직한 사건이었다.

죽은 사람은 전부 일용직 근로자들이었다. 유족들의 울부짖는 통곡 소리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집약해 놓은 것으로 우리를 전율케 한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어찌하여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욕망과 물신주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참사였다.

우리는 지금 소중한 가치를 대중매체에 저당잡힌 채 핑크빛 인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를 살리고 소득을 늘이는 것만이 지상 선인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미래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살려내는 일은 현미경으로도 찾을 수 없다.

진실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생명과 신뢰와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약자의 논리라고 배척하는 곳에서 대형 참사는 일어나고 있다. 다시금 죽은 이의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가슴을 때린다.

김   영   환
전 오현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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