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Thomas Hobbes)나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그린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이기심만으로 시장에서 일정한 질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리라고 예상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엇인가 사람들의 행동에 신호등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교차로에 서있는 신호등처럼 시장에도 일정한 규칙이나 규율이 있고 이를 지킬 때에만 시장질서라는 것이 만들어 진다. 이건 경제 이론이지만 상식이다.
질서는 여러 사람들의 행동의 조정될 때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장질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조정되어 있을 때 그 시장질서는 이루어진다.
우리제주의 감귤생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신호등이 작동해야하고 신호등 위반자에게는 시장에서 자동 퇴출되는 시장의 룰을 탄생시켜야한다. 지금 제주 지역의 감귤생산, 유통시장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룰을 탄생 할 수 없는 혼돈의 시장이다. 감귤도 수요와 공급선에서 가격이 이루어지므로 공급을 주리기 위한 열매따기 작업도 필요하다.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은 감귤생산시장에 생산 신호등이다. 이 등불은 생산시장에서의 품질경쟁이다. 지금 세계는 모든 상품이 마찬가지지만 더구나 농산물은 문화와 건강요소를 결합하는 창조적 전략으로 새로운 블루오션(Blue ocean strategy)을 창출하는 시대다. 그런데 생산비를 지원해주고, 열매따기를 지원하고, 감귤 먹기 운동, 감귤팔기운동을 펼치고, 선과 장 별, 생산지별 담당 공무원을 담당시키는 등은 어쩐지 산업화시대 냄새가 풍기고 정보화시대에는 엇박자인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정보화시대 우리 감귤생산시장에 신호등은 모든 상품은 양과 가격중심에서 질과 가치중심으로 이동한 글로벌 마케팅(global marketing) 이다. 질의 일등(외국산 포함)이 아니면 감귤유통시장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신호등을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시장에서 품질 경쟁을 시켜야한다. 1등은 살고 2등부터는 생산시장에서 죽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이 원리다.
지금 우리제주생산농민들은 태산보다 더 높은 보리고개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 이다. 1960년 전후에는 배고프며 살던 시대이고, 지금 밀감생산같이 조. 보리를 자기 밭에서 생산해서 자급자족하던 시대였다. 당시에는 탈곡기로 조, 보리를 탈곡했는데 농경사회이므로 한 동네에서 어느 집이 몇 섬 생산 했다고 자랑했으며 많이 생산한 집안이 선망이 대상이 되었고 부자가 되는 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양을 선호하는 기질이 우리 농민들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보다 질이다. 양이 많다고 해서 감귤먹기 운동, 팔기운동은 넌센스다. 감귤은 탄력성이 없는 먹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감귤은 우리제주경제의 공익적 가치는 물론 지역의 자연보호, 중산층의 원천적인 소득원 차원에서 절대로 포기 할 수 없는 생명사업이다. 그러나 밖으로는 FTA체결과 안에서는 질 경쟁시장은 멀기만 하다. 기술적으로도 당장 품질을 끌어올릴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와 구동 시스템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과거의 향수에 젖어서 감귤산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억지다. 경제에는 기적이나 우연이나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 환경 등 국내외 여건 전반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전략으로 대처해야한다. 핵심은 감귤산업 속에 잠재한 기회요소를 찾는 일이다. 그 하나가 생산시장에서 품질경쟁이다. 감귤산업도 품질에 따라 죽고 살고 해야 한다.
요즘 매스컴을 보면 다른 시도에서는 고품질 소량생산 쌀(적토미, 흑미 등)을 생산해서 미국, 중국, 일본의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 ability)시장에 수출하고 있으며, 키위, 파프리카는 일본시장 점유율 1위이며, 국화, 장미, 백합 등의 수출도 수직 상승하고 있으며, 포도와 배는 미국으로, 사과는 대만으로 수출해서 시장 점유율이 순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품질이다. 우리 감귤도 품질높이는 것만이 살길이다.
김 찬 집
수필가